연말이란 말 대신 더 좋은 우리말이 있었는데 뭐였더라 생각해보니 세밑이다.
첫 글자는 한자라 완전 우리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요새 거의 들어본 바 없는 예스러운 예쁜 말.
다음엔 굳이 생각하지 않고도 퍼뜩 튀어나오라고 일부러 적어보았다.
유달리 바쁘고 시끄럽게 보낸 세밑도 아니건만 혹독하게 앓고 있다.
아니 앓았다. 이젠 일어나 거동할 수 있으니 고비는 넘긴 것이 확실하다.
잠과 밥이 보약인데, 최근 그 둘을 다 소홀히 했으니 화를 자초했다.
하지만 잠과 밥은 늘 패거리처럼 몰려다닌다.
잠을 잘 자면 밥맛도 좋고, 잠을 못자면 밥도 먹기 싫으니 말이다.
탈이 난 뒤에야 강제로 둘 중 하나라도 붙들어보지만 특히 이번엔 대가가 독했다.
그래도 결국 병원에 안 가고 버틴 내가 더 독하다.
사실 어제는 두들겨맞은 것처럼 아픈 팔다리를 도대체 어떻게 두고 있어야 덜 아플까 끙끙거리며
병원행을 심각히 고민도 하였지만 꾸역꾸역 이불을 떨치고 일어나 손수 운전해 병원 찾아가기가 귀찮아서 관뒀다. 엉덩이 주사 맞을 생각도 끔찍했고, 감기의 모든 증상을 앓고 있으니 소화제까지 5개쯤 처방해줄 큼지막한 알약을 끼니마다 삼켜야하는 것도 몸서리치게 싫었다. 감기약 소화 안될까봐 소화제까지 처방해주는 병원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더라.
이번에도 깨달았지만 역시 감기든 독감이든 쉬는 게 제일이다.
이틀밤 꼬박 끙끙대며 열감기를 앓느라 본의 아니게 푹 쉬고 잘 자고 일어났더니 오늘은 내손으로 끼니를 막 챙겨먹게 된다. 아침만 해도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마우스 클릭은 하겠는데 자판질은 못하겠더니 점심으로 떡국 한 그릇 먹고 나선 훨씬 거뜬해져 병균으로 가득찬 방 환기도 시키고 땀 찬 베갯잇이며 이불호청도 세탁기에 넣고 돌렸다.
이만하면 세밑 갈무리는 잘하는 셈이라고 자화자찬하려고 시작했는데
부은 목과 더불어 아직 머리는 그닥 원할히 돌아가지 않는 모양으로 더 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새해엔 잘 먹고 잘 자고 일 잘하고 잘 놀아서 세밑에 앓지 말아야지.
이웃분들도 세밑, 새해 모두 강건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