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글자 제목에 맛들였다. ^^;; 다섯 글자로 제목 정하려고 한참 고민했네그려)
인간은 아무리 강한 척해도 꽤 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대기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병균과 바이러스(상당부분 인간이 자초하고 악화시킨 것들이긴 하지만;;)의 홍수 속에서 멸종하지 않고 이만큼 살아오며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고 별별 건강 도구와 약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쎈 척하다가도 약간만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병균의 침입에 허를 찔리고 마니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크고작은 병과 싸우는, 아니 병을 버텨내려는 고통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
2주 전쯤 아랫입술에 물집이 잡혀 크게 부풀었다가 딱정이가 앉기에 금세 나을 줄로만 알았는데 귀찮게도 아직도 그 모양이다. 원래 조금 피곤하면 입안이 군데군데 헐었다가 한 이틀 미련하게 자고 나서 헌 데가 아프도록 과일을 먹어대면 낫곤 했는데,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부실해지는 곳도 달라지나보다.
작년엔가도 한 번 입꼬리가 헐어 자꾸 갈라지며 오래도록 낫질 않은 적이 있어서 혹시 큰병이라도 낫나 싶어 피부과엘 갔더니 의사는 "수분 부족이죠 뭐"라며 퉁명스럽게 바르는 연고제 하나 덜렁 처방해준 전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약과 의술을 못미더워하며 차라리 인체의 자생력을 선호하는 편인 나는 그때도
아토피 및 여드름을 비롯한 온갖 피부염 종류의 만병통치약처럼 적혀 있는 연고제의 효능을 읽어본 뒤 약은 뚜껑도 안 딴 채 어영부영 물 마시기 대회에 나간 사람처럼 물을 마셔 결국 갈라진 입꼬리와 결별할 수 있었다.
헌데 이번 입술의 꼬락서니는 누런 딱정이와 빨간 딱정이가 번갈아 앉았다가 입술을 과도하게 놀리면 상처가 찢어져 주르륵 피가 나는 것이 마냥 방치할 순 없을 듯하여, 작년엔가 받아온 그 연고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다행히 유통기한도 남아있으니 만병통치의 효능을 자랑하는 그 약을 열심히 발라주기 시작했는데...
한 일주일 간은 부풀었던 아랫입술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상처와 딱정이 크기가 줄어드는 것 같아 서서히 낫는 것처럼 여겼지만 세수할 때마다 떨어져 나간 딱정이 자리엔 또 다시 매번 누렇거나 빨간 딱정이가 자리를 잡았고, 더는 상처가 줄어드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아래쪽으로 염증이 번지는 느낌이랄까. 전보다 다른 부위의 입술껍질도 더 많이 벗겨졌다.
열흘을 기점으로 의심쟁이인 나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말았다. 아니 무슨, 겨우 입술 하나 부르튼 게 열흘 넘게 약을 발라도 안 낫는단 말인가!
피부염계의 만병통치약인 척 적혀있던 수많은 효능과 효과도 못 미더웠다. 혹시 떨어졌을 면역력을 높여보겠다고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하도 보양식과 과일을 먹어줘서 누렇게 떴던 얼굴이 피둥피둥 번쩍번쩍 광이 날 정도이거늘.
결국 어제부터 나는 연고 사용을 중단했다. 대신 수분크림을 좀 발라준 뒤 계속 물을 마셔댔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늘 축축했던 딱정이가 좀 줄어들고 말라붙은 느낌인 것이 좀 나은 것도 같았다. 물론 꼴사나운 입술 생각 안하고 욕심 내서 홍옥 사과를 통째로 깨물어 먹다간 어느 순간 드라큘라처럼 주르륵 턱으로 피가 -_-;; 흘러 내리긴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내 몸의 회복력을 신뢰하는 쪽이 더 낫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사실 이런 내 믿음에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썩은 살을 잘라낸 뒤 물과 식염수로 닦아주고는 건강한 살에서 스며나온 피가 마술 같은 효과를 일으키길 기다려본 적이 전에도 있기 때문이다.
몇년 전 급성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던 엄마는 잠시 몸을 못쓰는 사이 욕창이 생겼었다. 전신마비로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만 생기는 줄로 배우고 들었던 욕창은 혈당수치 같은 몸의 균형상태가 심히 깨지면 단 몇시간만에도 생길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환자 본인은 아픈 줄을 몰랐으니 그나마도 다행이었지만 퇴원을 하고도 꼬박 1년동안 가정간호사가 집에 들낙거리며 치료를 해야할 정도로 울 엄마의 욕창은 그 뿌리가 질겼다. 병원에 있을 때 두달 이상 온갖 연고제와 특수 거즈를 붙여도 전혀 진척이 없자 어디선가 불려온 욕창전문 간호사는 대뜸 두 군데나 되는 엄마의 욕창 부위 죽은 살을 다 잘라냈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빠 깊이 움푹 패였던 엄마의 상처에 살이 다 차오르기까지 장장 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때도 특효약 따위는 없었다. 병원놀이를 하듯 드레싱 도구 일체를 구비해놓고 가정간호사의 지시대로 매일 상처를 소독했지만 안에 바르는 값비싼 연고제는 사실 습윤제에 불과했고 제일 좋은 치료제는 엄마의 속살에서 뿜어 나올 혈액이었다.
<우와, 엄마 오늘은 피가 많이 나오네. 금방 낫겠다!>고 좋아했던 몇년 전의 어느 날처럼
좀 전에 밤참으로 고구마와 사과를 먹다가 주르륵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나는 공포스러운 장면에 오히리 킥킥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며칠만 더 참으면 낫겠구만...>
입술에 상처를 입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입술이 얼굴의 다른 부분보다 붉은 색이 나는 건 그만큼 모세혈관이 많이 모여있기 때문이고 찢어지면 다른 데보다 피도 많이 난다. 그러니 뭐, 당연히 건강한 피도 많이 나올 테고 바이러스가 잠식한 내 입술에서 지금쯤 장렬한 싸움이 벌어졌을 게다.
누가 이기나 어디 해보자는 심정이긴 한데 이번에도 내가, 아니 질기고 독한 인간의 자생력이 이기지 않겠나 싶다.
인간은 아무리 강한 척해도 꽤 약한 존재임이 틀림없다.
대기에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병균과 바이러스(상당부분 인간이 자초하고 악화시킨 것들이긴 하지만;;)의 홍수 속에서 멸종하지 않고 이만큼 살아오며 생명을 더 연장시키려고 별별 건강 도구와 약을 만들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쎈 척하다가도 약간만 빈틈을 보이면 여지없이 병균의 침입에 허를 찔리고 마니
인간의 역사는 어쩌면 크고작은 병과 싸우는, 아니 병을 버텨내려는 고통의 역사일 수도 있겠다.
2주 전쯤 아랫입술에 물집이 잡혀 크게 부풀었다가 딱정이가 앉기에 금세 나을 줄로만 알았는데 귀찮게도 아직도 그 모양이다. 원래 조금 피곤하면 입안이 군데군데 헐었다가 한 이틀 미련하게 자고 나서 헌 데가 아프도록 과일을 먹어대면 낫곤 했는데, 늘어가는 나이와 함께 부실해지는 곳도 달라지나보다.
작년엔가도 한 번 입꼬리가 헐어 자꾸 갈라지며 오래도록 낫질 않은 적이 있어서 혹시 큰병이라도 낫나 싶어 피부과엘 갔더니 의사는 "수분 부족이죠 뭐"라며 퉁명스럽게 바르는 연고제 하나 덜렁 처방해준 전적이 있었다.
가뜩이나 약과 의술을 못미더워하며 차라리 인체의 자생력을 선호하는 편인 나는 그때도
아토피 및 여드름을 비롯한 온갖 피부염 종류의 만병통치약처럼 적혀 있는 연고제의 효능을 읽어본 뒤 약은 뚜껑도 안 딴 채 어영부영 물 마시기 대회에 나간 사람처럼 물을 마셔 결국 갈라진 입꼬리와 결별할 수 있었다.
헌데 이번 입술의 꼬락서니는 누런 딱정이와 빨간 딱정이가 번갈아 앉았다가 입술을 과도하게 놀리면 상처가 찢어져 주르륵 피가 나는 것이 마냥 방치할 순 없을 듯하여, 작년엔가 받아온 그 연고제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_-;;
다행히 유통기한도 남아있으니 만병통치의 효능을 자랑하는 그 약을 열심히 발라주기 시작했는데...
한 일주일 간은 부풀었던 아랫입술이 차츰 가라앉으면서 상처와 딱정이 크기가 줄어드는 것 같아 서서히 낫는 것처럼 여겼지만 세수할 때마다 떨어져 나간 딱정이 자리엔 또 다시 매번 누렇거나 빨간 딱정이가 자리를 잡았고, 더는 상처가 줄어드는 느낌도 없었다. 오히려 아래쪽으로 염증이 번지는 느낌이랄까. 전보다 다른 부위의 입술껍질도 더 많이 벗겨졌다.
열흘을 기점으로 의심쟁이인 나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말았다. 아니 무슨, 겨우 입술 하나 부르튼 게 열흘 넘게 약을 발라도 안 낫는단 말인가!
피부염계의 만병통치약인 척 적혀있던 수많은 효능과 효과도 못 미더웠다. 혹시 떨어졌을 면역력을 높여보겠다고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고 하도 보양식과 과일을 먹어줘서 누렇게 떴던 얼굴이 피둥피둥 번쩍번쩍 광이 날 정도이거늘.
결국 어제부터 나는 연고 사용을 중단했다. 대신 수분크림을 좀 발라준 뒤 계속 물을 마셔댔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루 자고 일어났더니 늘 축축했던 딱정이가 좀 줄어들고 말라붙은 느낌인 것이 좀 나은 것도 같았다. 물론 꼴사나운 입술 생각 안하고 욕심 내서 홍옥 사과를 통째로 깨물어 먹다간 어느 순간 드라큘라처럼 주르륵 턱으로 피가 -_-;; 흘러 내리긴 하지만 이렇게 무식하게 내 몸의 회복력을 신뢰하는 쪽이 더 낫다는 확신이 점점 강해진다.
사실 이런 내 믿음에 완전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썩은 살을 잘라낸 뒤 물과 식염수로 닦아주고는 건강한 살에서 스며나온 피가 마술 같은 효과를 일으키길 기다려본 적이 전에도 있기 때문이다.
몇년 전 급성신부전증으로 중환자실 신세를 져야 했던 엄마는 잠시 몸을 못쓰는 사이 욕창이 생겼었다. 전신마비로 오래 누워 있는 환자들에게만 생기는 줄로 배우고 들었던 욕창은 혈당수치 같은 몸의 균형상태가 심히 깨지면 단 몇시간만에도 생길 수 있는 무서운 병이었다. 환자 본인은 아픈 줄을 몰랐으니 그나마도 다행이었지만 퇴원을 하고도 꼬박 1년동안 가정간호사가 집에 들낙거리며 치료를 해야할 정도로 울 엄마의 욕창은 그 뿌리가 질겼다. 병원에 있을 때 두달 이상 온갖 연고제와 특수 거즈를 붙여도 전혀 진척이 없자 어디선가 불려온 욕창전문 간호사는 대뜸 두 군데나 되는 엄마의 욕창 부위 죽은 살을 다 잘라냈다. 생각보다 상황이 나빠 깊이 움푹 패였던 엄마의 상처에 살이 다 차오르기까지 장장 1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하긴 했지만 그때도 특효약 따위는 없었다. 병원놀이를 하듯 드레싱 도구 일체를 구비해놓고 가정간호사의 지시대로 매일 상처를 소독했지만 안에 바르는 값비싼 연고제는 사실 습윤제에 불과했고 제일 좋은 치료제는 엄마의 속살에서 뿜어 나올 혈액이었다.
<우와, 엄마 오늘은 피가 많이 나오네. 금방 낫겠다!>고 좋아했던 몇년 전의 어느 날처럼
좀 전에 밤참으로 고구마와 사과를 먹다가 주르륵 입술에서 흐르는 피를 보며 나는 공포스러운 장면에 오히리 킥킥 웃으며 혼잣말을 했다. <며칠만 더 참으면 낫겠구만...>
입술에 상처를 입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입술이 얼굴의 다른 부분보다 붉은 색이 나는 건 그만큼 모세혈관이 많이 모여있기 때문이고 찢어지면 다른 데보다 피도 많이 난다. 그러니 뭐, 당연히 건강한 피도 많이 나올 테고 바이러스가 잠식한 내 입술에서 지금쯤 장렬한 싸움이 벌어졌을 게다.
누가 이기나 어디 해보자는 심정이긴 한데 이번에도 내가, 아니 질기고 독한 인간의 자생력이 이기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