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부침개

식탐보고서 2006. 12. 3. 01:37
원래는 뜬금없이 만두가 먹고 싶었다.
집에서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어, 다진 김장김치와 두부, 숙주, 갈은 돼지고기를 넉넉하게 넣고빚은 엄마표 김치왕만두 말이다.
그렇지만 돌이켜보건대, 우리 집에서 만두를 빚어본 게 최소한 10년은 넘은 것 같다.
큰 동생이 올해로 결혼 10주년인데, 올케들은 단 한 번도 그 맛을 보지 못했으니까...

우리 삼남매에게 맛있는 영양간식을 해주기로 온 동네 소문난  솜씨 아줌마였던
우리 엄마는 특히 긴긴 겨울에 만두며 맛탕, 떡볶이, 김치부침개, 감자고로께(크로켓이 맞는 표현이지만 느낌이 안 살아서 과거형으로~), 야채빵 따위를 만들어주셨다.

다른 간식과 달리 만두는 삼남매가 모두 달려들어 거들어야 했으므로
처음엔 재미나서 신을 냈지만 나중엔 몹시 지겨워했던 것 같다.
동생들의 어마무시한 식성을 당해내려면 큼지막한 만두를 최소 100개는 만들어야 했는데
만들면서 동시에 옆에서 삶아 건져먹으면서
'나 만두 10개 먹었다. 20개 먹었다'고 자랑하는 묘미는 참으로 뛰어났지만 ㅡ.ㅡ;;
요령피우며 달아나는 남동생들 대신 나 혼자 손목 아프게 만두를 빚어대는 건 그리 쉽지 않았다.
엄마가 밀대로 쓱쓱 동그랗게 밀어 내미는 만두피 속도를 미처 내가 맞추지 못하면 엄마가 다시 만두를 빚곤 했는데, 그러면 또 엄마가 대충대충 만든 만두 모양이 안 예뻐 내가 만든 것과 차이가 난다며 짜증을 내기도 했다. 그놈의 잘난척은 암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었던 듯.

하여간 추어진 날씨와 함께 뜬금없이 만두 생각이 간절하긴 했지만
지난 10년 이상 단 한번도 내가 손수 시도해본 적이 없다는 건 그만큼 자신도 없고
몹시 귀찮다는 반증이었으므로, 그나마 간편한 김치부침개를 시도했던 것.

김치를 송송 잘라 미리 설탕과 참기름으로 양념을 하는 것까지
엄마의 비법대로 따라해보지만 늘 맛이 5퍼센트쯤 부족했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정말로 맛이 있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부침개를 먹을 때 나는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부쳐진 가장자리를
뱅둘러 맨 먼저 뜯어 먹고나서 가운데를 먹는다.
본데 있는 집안은 부침개를 넓게 부치면 가지런하게 잘라 상에 올린다지만
부침개란 그저 큼지막하게 부쳐 접시에서 직접 찢어먹어야 맛있다는 게 나의 지론이다.
ㅋㅋ

암튼 그래서 넓다랗게 부친 김치부침개 2장을 저녁밥과 함께 해치웠더니
오늘은 나의 평소 밤참 시간인 새벽 1시를 넘기고도 배가 고프질 않다.
하지만 마루에 나갈 때마다 온집안에 진동한 기름냄새 때문에
아.. 오늘 김치부침개를 부쳐 먹었지...
그리고 아직도 부침개 2장이 식탁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아무래도 아침이 오기 전에 홀라당 남은 2장을 다 먹어치우지 않을까 싶다.

그저.. 낙이라곤 먹어대는 낙밖에 없다고 주절댔었는데
11월 내내 그 낙마저 시큰둥, 식탐녀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행태를 보이더니
깨갱 꼬리를 내리고 오는 겨울을 인정하였더니만
식도락도 다시 제자리를 잡나보다.
다행(정신건강을 위해)인지 불행(체중과 상관없이 늘어나는 뱃살을 위해)인지 원...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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