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복원

삶꾸러미 2008. 4. 21. 17:40
지금 사용하고 있는 컴퓨터는 2005년에 장만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용범위라고 해봤자 워드 프로세서 기능과 인터넷질 밖엔 없는 내가 굳이 왜 용량이 더 큰 컴퓨터를 사겠다고 결심했는지 잘 모르겠다. 예나 지금이나 음악이든 영화든 파일로 다운받아 즐기는 수고와 부지런함은 나와 거리가 멀다.

아무튼 몇년 동안 나는 내 컴퓨터에 전혀 불만이 없었다. 2002년에 산 노트북의 느릿느릿한 속도도 별 문제 없는 내가 아닌가. 작년엔가 한번 a/s를 받기는 했는데 무슨 일로 기술자를 불렀는지도 생각나진 않지만 -_-; 보증수리 기간이 지나 출장비를 지불해야 했던 대신 바이러스 감시/차단 프로그램을 깔아주어서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몇달 전인가 바이러스 프로그램이 더는 인증되지 않는 사용자라면서 업데이트가 중지되고 불안한 나날이 이어졌다. 걸핏하면 나타나는 이상한 프로그램(패치업이라던가)에선 악성코드가 6개 발견 되었다느니, 4개 발견되었다느니 수시로 나를 겁주며 치료를 원하면 결제를 진행하라고 독촉했다. 나의 가장 큰 공포는 컴퓨터가 잘못되어 8년간 작업해온 모든 원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다. @.@ 노트북을 병행해서 사용했던 2000년 이전의 원고들은 아깝게도 다 날려 사라졌다. 컴퓨터 회사 기술자라는 사람들은 걸핏하면 바이러스 탓을 하며, 복원시도는 해보겠지만 전부 복구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는 책임없는 말로 나를 실망시켰고, 과거에 실제로 복원해다 준 파일들은 전부 외계어 투성이였다. ㅠ.ㅠ
컴맹에 가까운 내가 그나마 생각해낸 방법은 압축파일을 CD에 저장해두는 것 이외에 주로 쓰는 메일계정의 장기 보관함에 넣어두는 것이다(저장용 CD도 오래 되면 에러나더라! 그렇다고 또 외장하드를 장만하는 건 너무 어마어마한 일 같고...) 어차피 요즘 원고파일은 죄다 이메일로 전송하므로 파일이 너무 크지만 않으면 계속 보관할 수 있어 다행이다.

어쨌거나 무료 바이러스 치료 프로그램을 깔아놓기는 했지만 점점 컴퓨터가 느려지는 것이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고, 은행 인터넷 뱅킹 보안 프로그램과 함께 깔린 듯한 몇몇 이름모를 프로그램에서 계속 악성코드가 발견됐다고 들쑤셔댔다. 어쩔 땐 그런 것들이 오히려 스파이웨어라는 말을 들은 것도 같아서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꼴보기 싫은 프로그램을 정리한답시고 제어판에 들어가 고민고민 끝에 몇 가지 불필요해 <보이는> 파일을 지웠더니 크헉... 엉뚱하게 사운드카드 드라이브까지 덩달아 삭제된 모양이었다. 설상가상으로 용용프로그램 CD로 필요한 파일을 다시 깔려고 했더니, CD롬이 안 읽힌다. ㅠ.ㅠ  생각해보니 그동안 최소 6개월은 CD롬을 전혀 안쓰고 살았던 것 같다. 기계든 사람 몸이든 안쓰면 고장난다는 진리를 왜 또 까먹었을까.. 에효.
컴맹주제에 그냥 가만히 있기라도 할 것이지... 겁없이 제어판은 또 왜 들어갔담. 이럴 땐 무식하더라도 일단 그냥 안철수연수소에 가서 <돈 주고> 보안프로그램을 사는 수밖에 없다. 컴퓨터 기술자를 부를래도 먼저 바이러스는 치료하고 봐야 될 것 아니겠나. 아니나 다를까 미리 무료검사를 해봤더니 바이러스가 바글바글, 스파이웨어도 바글바글...

내가 안철수연구소에서 보안 프로그램을 <돈주고> 산다고 하면 다들 무료 백신 다운받으면 되지 뭣하러 쓸데없는 데 돈을 들이냐고 주변에서 핀잔을 주는데, 내 마음은 또 그렇지가 않다. 공짜는 어쩐지 뭔가 모자랄 것 같아 불안하고, 가뜩이나 밀려 있는 상황에 애써 작업한 원고를 날려버린다고 생각하면 정말이지 죽고싶어 질 게 뻔하다.

결론은 유료 보안 프로그램을 깔고 컴퓨터 벌레들을 죄다 잡아 없앤 뒤 마음을 놓았고, 월요일에 부르려던 컴퓨터 기술자도, 응용프로그램 CD 없이도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V
아직 CD롬은 수리가 필요하겠지만, <시스템 복원>으로 사라졌던 사운드카드 드라이브를 되살리면 된다는 사실을 오늘 아침 극적으로 생각해냈기 때문이다!  남들은 다 아는 기본적인 상식이겠지만 스스로도 어찌나 기특한지 푸하하하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러면서 문득.. 인생에도 <시스템 복원> 기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없었던 일로 되돌리고 처음부터, 아니 내가 원하는 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시 복원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순간순간 더욱 열심히 살아야 하겠지만, 인생에 몇번쯤은 <시스템>을 되돌릴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과거 시스템보다 현재의 시스템이 더 나아진 사람들이야 쓸데없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계속해서 나사가 풀려 관리가 엉망진창인 내 경우엔 반짝반짝 활기차게 움직이던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정말이지 되돌리고 싶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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