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영화를 보는 줄도 모르고 눈길을 달려가선(사전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를 보자는 얘기가 오갔었다) 영화 시작시간에 가까스로 입장을 했던 터라 정말 어떨결에 보게 된 영화였다.
화장실에 들르느라 표를 따로 받아들고서야 내가 보려는 영화가 <추격자>라는 걸 깨닫고는 약간 난감했다.
내가 싫어하고 절대 못보는 <괴기/공포영화> 범주에 드는 건 아니지만 워낙 무섭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몹시 떨렸다. 이런 건 미리 마음의 준비를 좀 단단히 해두고 봐야하는 건데.
그러곤 예상대로 영화를 보며 내내 가슴을 졸이며 덜덜 떨었다.
폭력과 유혈을 피할 순 없는 소재이니 눈감고 얼굴 가리며 못본 장면들이 더러 있긴 하지만
영화가 끝나고 온몸에 쥐가 난 듯 뻐근한 몸을 차마 일으키지 못한 채
"이거 만든 감독이 누구라고?" 되물었다.
"처음 들어보는 감독인데 각본까지 직접 썼다고?"
워낙 유명한 사건을 소재로 삼았으니 뻔할 것 같은 데 전혀 뻔하지 않게 참 잘도 만들었다.
게다가 공인된 배우 김윤석과 하정우의 연기는 놀라울만큼 몰입을 이끈다.
숨가쁘게 달리는 그들과 함께 헉헉 대다가 토할 것처럼 괴로운 목구멍의 갈증을 나도 모르게
실감할 정도.
설명할 수도 없고 이유도 없는 인간 본연의 악을 그렸다고 했던가.
늦은밤 집으로 돌아오는데 눈이 쌓인 언덕길을 비추는 주황색 가로등이 어쩐지 섬뜩해서
인적 없는 골목을 허겁지겁 달려야 했다.
꽤 무섭긴 해도 <살인의 추억>을 견딜 수 있는 정도의 담력이라면 충분히 볼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이 정도로 짜임새 있고 군더더기 없는 영화를 무섭다는 핑계로 포기했더라면 손해봤을 것 같다.
하지만 차마 다시 볼 수는 없을 듯. -_-'
회상하는 게 무서워서 후기를 쓸까말까 하다가
차라리 쓰고 넘겨버리자는 결론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젠 잊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