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증나는 바보짓을 했다.
영리한 듯 잘난 척 해도 나란 인간은 알고보면 무척 허술하다.
조금 전 누군가 초인종을 눌렀다.
근처 교회나 절 따위에서 선교나 포교를 위해 온 사람들에겐 내가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기 때문에
누구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이웃에 사는 새댁인데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다. -_-;;
이웃이라는 말에 일단 현관문을 열고 내다보니, 젊은 여자 둘이 추위에 달달 떨면서
자기들은 신학대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수업 때문에 필요하니 간단하게 설문지 한장만 써달라고 했다.
시간 없고, 기독교에 대해선 관심도 없다고 했더니만...
너무 추우니 잠깐만 현관에라도 들어가 선 채로 설문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오늘 아직 한장도 못 받았다나.
아.. 영하 11도라는 오늘의 강추위만 아니었어도 그냥 내쫓을 수 있었을 텐데
그놈의 추위 때문에 나는 그만 두 사람을 집안으로 들이고 말았다. ㅠ.ㅠ
일단 집안으로 들어와 설문지라는 것을 읽어 보니..
신의 존재를 믿는가, 사후세계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님 어머니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따위의 문항이었다.
윽... 설문지 맨 아래를 보니 "엘로힘 아카데미"라고 적혀있었다.
앗! 그제야 정신이 퍼뜩 들었다.
엘로힘이라면 기독교계에서도 이단이니 어쩌니 말이 많아 언젠가 시사 다큐에서도 한번 다룬 적이 있던 곳 아닌가.
아니나 다를까... 그들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려는 듯
설문지를 받고나서도 자기가 수업에 발표할 내용을 5분간만 듣고 평가를 해달라고 했다.
거기서 질 수야 없지.
나는 설문지만 해주기로 약속했으니 더는 시간을 내줄 수가 없고
종교, 정치에 대해서는 누구와도 토론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으며
특히 선교를 할 작정이라면 당장 나가달라고 말했다.
그들은 영리하게 이내 꼬리를 내리고 슬쩍슬쩍 무슨 일을 하는지 (설문지에 직업란도 있었다!)
기묘한 구조로 되어 있는 우리 집에 대체 누가 사는지
애들 사진이랑 그림은 냉장고에 왜 그리 많이도 붙어 있는지 묻다가
내가 왜 종교에 회의적인지 묻기도 했다. 윽.
그만들 가보시라는 말에 따뜻한 물 한잔만 달라는 청을 또 거절하기가 어려워
녹차씩이나 끓여주고 부글부글 끓는 속을 참다가 내보내긴 했는데
돌이켜보니 몹시 찜찜하고 화난다!
더욱이 설문지 마지막 연락처 란에 암 생각없이 집 전화번호를 적어주기까지 했으니 어쩌지!!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아주 끈질긴 인간들이어서 집으로 계속 찾아오기도 하고 전화번호로 계속 연락을 취하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모양이다. ㅠ.ㅠ
아아아 짜증...
앞으로 또 찾아와 괴롭히면 어쩌냐?
어떤 종교든, 제 아무리 훌륭한 진리이든 남에게 믿음을 강요하거나 피해를 주는 종교인들은 정말 싫다!
이젠 우체부 아저씨나 택배 기사라고 해도 문 열어주기 싫겠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