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주의보

삶꾸러미 2008. 1. 8. 15:45

다른 지역엔 어땠는지 모르지만 어제 서울 인근엔 안개가 몹시 심했다.
온세상이 뿌옇게 흐려져 모든 게 희미해 보였고 강변도로를 지날 땐 시야가 정말로 턱턱 막혀
어쩐지 폐가 졸아들고 숨이 가빠오는 것 같았다.
이게 바로 폐쇄공포증, 또는 천식에 걸린 느낌이 아닐까 걱정될 정도의 누렇고 기분 나쁜 안개 속을
하루종일 돌아다니고 보니 겨울답지 않게 포근한 날씨 때문에 연일 생겨났다는 겨울 안개가 새삼 싫어졌다.

안개 정국, 오리무중 같은 부정적인 말들도 쓰이지만, 그동안 나는 안개를 좋은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새벽안개. 물안개. 해무.
내가 그간 안개와 함께 제일 먼저 떠올렸던 말들이다.
순전히 옛날에 물가로 여행을 갔을 때 느끼고 보았던 싱그럽고 촉촉한 안개 덕분이었고
예전엔 그 속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면 내 폐부까지 깨끗하고 촉촉한 물방울이 자리를 잡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젠 뿌연 안개 속에서 깊은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심호흡을 해도 폐부 안쪽까지는 공기가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랄까.
스멀스멀 뿌연 먼지와 함께 몰려다니는 누런 안개속엔 분명 수많은 병균과 변종 감기 바이러스와
나쁜 기운들이 담겨있을 것 같았다.
추운 겨울동안에는 늘 동면하고 싶다고 앙탈을 부리는 사람으로서 어제는 그런 투정도 크게 잘못하는 짓으로 여겨졌다.
그러고는 코끝이 쨍하게 얼어붙는 느낌의 추운 날씨를 좋아한다는 사람들이 흔히 내뱉는 말이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겨울이. 겨울 다워야. 겨울이지. +_+

창밖을 내다보니 오늘은 그래도 어제보다 안개가 옅어진 듯하다.
그렇지만 어쩐지 아득한 호흡곤란의 느낌 때문에 누리끼리한 겨울 안개속을 돌아다니기가 꺼려져서 집밖으로 한 발짝도 내밀기가 싫다. 한때 니코틴에 시달렸던 나의 가엾은 폐를 위한 알량한 배려라고나 할까.

이젠 좀 안개주의보 따위 걷어치우고
지난 주 어느 맑은 저녁처럼 밤하늘에 총총 빛나는 별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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