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집

추억주머니 2007. 10. 2. 02:00
정민공주를 위한 영어수업에서 이번주엔 장소를 묻는 의문문과 함께 집의 구조를 다루었는데
그러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그림엔 외국의 흔한 주택 구조에 따라 자는 방, 화장실, 거실, 부엌, 마당 따위가 그려져 있었는데 공주는 2층에 주로 밀집된 방으로 연결되는 2층의 작은 복도 같은 공간을 도저히 이해를 못하는 거다.
그림 속의 엄마는 바로 그곳에 서서 아이들에게 "너 어딨니?"라고 묻고 있었는데!

언젠가 놀러갔던 펜션과 호텔 복도를 예로 들어 구조를 설명하려 애쓰긴 했지만
(공주는 영어공부와 상관없이 또 궁금한 건 절대로 못참는다 -_-'')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 같진 않았다.
그러고 보니 세상에나! 주변에 이층집에 사는 측근이 단 한명도 없고
내 어린시절과 달리 공주는 이층집엘 놀러가서 그 재미있고 독특한 구조를 속속들이 경험해 본 적이 전무했다!
아 물론 우리 친척들이 주로 서민적인 탓도 있겠지만
과거엔 마당 넓은 2층집에 살던 이들도 이젠 아파트나 빌라로 사는 곳을 옮겼거나
그 땅에 건물을 올려 층층마다 임대료를 챙기는 건물주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1층엔 주방과 넓은 거실, 식당 방 따위가 있고 침실은 죄다 2층으로 몰아놓은
서양식 2층집과는 구조가 좀 다르지만, 어린 시절 나의 로망이기도 했던
이층집엘 놀러가면 우선 가장 눈길을 끄는 계단과 2층 베란다, 철제 그네가 놓여있기 십상인 잔디 깔린 마당을 이제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
예전에도 지금에도 대대로 이어진 넉넉한 부유함을 상징하는 평창동이나 성북동 정도에 가면 또 모를까... 아 맞다, 신도시의 단독주택 단지나 새로 뜨기 시작한다는 타운하우스를 찾으면 되긴 하겠군.

어쨌든 우리 동네에 꽤 많았던 예쁜 2층 양옥집들은 지금 죄다 빌라나 다가구주택으로 바뀌었고 초록 잔디밭이 예뻤던 공간은 자동 개폐식 차고문이 달린 주차장으로 탈바꿈했다.
땅덩어리가 워낙 좁고 집이 필요한 사람들의 수는 늘어나기 때문이겠지만,
부동산 문제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 나는 문득 옛날이 그리워졌다.
물론 나는 마당 넓은 2층집엘 살아본 적은 한번도 없지만, 친척집이든 친구네 집이든
푸르른 잔디밭과 정원을 갖춘 2층집엘 드나들며 노는 게 정말로 좋았었다.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나무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면 눈앞에 새로운 놀이터라도 펼쳐진 것 같았고, 금상첨화로 다락방까지 있는 집이라면 매캐한 먼지를 뒤집어쓰고서 하루종일이라도 그곳에서 놀 수 있었다.

아...
그런데 공주는 그나마 전원주택인 고모할머니나 작은 할아버지댁의 옥상 올라가는 계단 이상의 구조는 상상하기 힘들어 했던 거다.
내가 하도 마당 있는 집 타령을 해대며 아파트 혐오증을 읊어댄 탓에 공주도 아파트 보다 마당 있는 주택이 훨씬 좋은 줄 알고 있었는데, 오늘 그림 속 이층집의 방 이름들을 하나하나 되뇌며 영어단어를 익히던 공주는 우리도 방 8개짜리 이층집을 지어서 할머니랑 고모랑 같이 살면 좋겠다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을 했다.

흠... 그런데 나는 선뜻 맞장구를 쳐주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야 나도 마당 있는 2층집에 사는 것이 로망이었지만
현재의 로망은 흙냄새 맡으며 기와 얹은 한옥에 사는 것이라 말로라도 '그러자!'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2층 한옥이라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경복궁 경회루밖에 없는 것을 어쩌랴. -_-;;

하지만 이 밤중에 다시 생각해보니
정민공주네가 옛날 느낌의 예쁜 2층 양옥집에 살게 되어 혹시 나를 청한다면
주책바가지 이 고모도 다락방 한귀퉁이에서 계속 무수리로 살아줄 용의는 있을 것 같다. ^^
아담한 한옥은 까짓거 작업실로 꾸미면 되지!

돈 안드는 상상이라고 아주 마음껏 날개를 펼치는 중이다.
현실에선 아... 그저 돈이 웬수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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