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제목을 '혜화동'으로 하려했으나
엄밀하게 내가 다녀온 곳은 동숭동이라 마음을 바꿨다.
흔히 '대학로'라고 부르는 그곳은 갈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난생처음 대학로엘 가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 여가로 연극활동을 하던 '교련'선생님이 나오는 연극을 단체로 보러 갔더랬다(당연히 주요배역은 아니었고, 선생님은 '마을사람3' 정도의 단역이었다).
연극 제목은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이었는데, 속으론 발랑 까졌어도 겉으론 나름 순진했던 나는 코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러브신과 그림자로 처리되는 마지막 베드신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
그 뒤론 꽤나 자주 연극을 보러 다녔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문예회관 앞 계단이나 마로니에 공원 큰 나무 아래 앉아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가 더 정겹기도 했는데,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영문 모를 연극을 보고 나서 어린 마음에 좌절감에 휩싸이이도 했지만 그땐 차곡차곡 모아둔 연극 팸플릿을 대단한 보물 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대학 시절엔 주로 '미팅'을 하러 찻집과 주점과 카페를 더 많이 많이 다녔던 듯하고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로 변해, 온갖 공연과 술판이 벌어지던 시끄러운 분위기에 한참 휩쓸리던 시기를 지나고선 너무 정신없어서 그 동네를 멀리하던 때도 있었더랬다.
동물원이 부른 노래 '혜화동'의 정서처럼
세월이 흐른 뒤 찾아간 대학로의 골목골목은 참 많이도 변했고
지금도 꾸준히 변하고 있다.
공연히 집에 가기 싫어서 친구와 배회하던 주택가 뒷골목은 완전히 빌딩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몇 개 안 되던 소극장들은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수십개쯤으로 늘어났으며,
골목골목마다 예쁜 카페처럼 생긴 고깃집에 호프집, 찻집들까지 갈 때마다 변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요즘도 가끔 공연을 보러 가거나 맛집을 찾아 대학로를 가게 되면
내가 보아온 대학로의 25년(무려!) 역사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촌스러운 감청색 치마에 하얀 웃도리 교복을 입었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나이 차 외엔 그닥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동숭동과 혜화동은 참 많이도 변했다.
그나마 혜화동 성당과 마로니에 공원, 문예회관과 샘터 파랑새 극장, 학림이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거기가 변함없이 대학로임을 항변하고 있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숭동에 새로이 터를 잡았다는 출판사를 찾아가느라
한낮에 동숭동과 혜화동 골목골목을 새삼 누비고 다녀보니 더욱 낯선 느낌이었는데
마로니에 공원의 아름드리 나무가 휘청휘청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걸 보고서야
거기가 대학로였다는 게 실감되었다.
이젠 공연을 보러가는 것보다 그저 밥 먹고 차마시고 뒷골목에 자리잡은 문방구 순례를
하는 것이 내겐 더 익숙한 익숙한 대학로 탐방 절차가 되고 말았지만
앞으로도 그 거리와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랜 추억 때문에라도 묘한 기분에 젖게 되리라.
엄밀하게 내가 다녀온 곳은 동숭동이라 마음을 바꿨다.
흔히 '대학로'라고 부르는 그곳은 갈 때마다 기분이 묘하다.
내가 난생처음 대학로엘 가게 된 건 고등학교 1학년 때.
중간고사가 끝나고 나서, 여가로 연극활동을 하던 '교련'선생님이 나오는 연극을 단체로 보러 갔더랬다(당연히 주요배역은 아니었고, 선생님은 '마을사람3' 정도의 단역이었다).
연극 제목은 <느릅나무 그늘의 욕망>이었는데, 속으론 발랑 까졌어도 겉으론 나름 순진했던 나는 코앞에서 펼쳐지는 배우들의 러브신과 그림자로 처리되는 마지막 베드신에 꽤나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
그 뒤론 꽤나 자주 연극을 보러 다녔다.
연극이 끝나고 나서 문예회관 앞 계단이나 마로니에 공원 큰 나무 아래 앉아 친구들과 나누는 수다가 더 정겹기도 했는데, <고도를 기다리며> 같은 영문 모를 연극을 보고 나서 어린 마음에 좌절감에 휩싸이이도 했지만 그땐 차곡차곡 모아둔 연극 팸플릿을 대단한 보물 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대학 시절엔 주로 '미팅'을 하러 찻집과 주점과 카페를 더 많이 많이 다녔던 듯하고
주말이면 차 없는 거리로 변해, 온갖 공연과 술판이 벌어지던 시끄러운 분위기에 한참 휩쓸리던 시기를 지나고선 너무 정신없어서 그 동네를 멀리하던 때도 있었더랬다.
동물원이 부른 노래 '혜화동'의 정서처럼
세월이 흐른 뒤 찾아간 대학로의 골목골목은 참 많이도 변했고
지금도 꾸준히 변하고 있다.
공연히 집에 가기 싫어서 친구와 배회하던 주택가 뒷골목은 완전히 빌딩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몇 개 안 되던 소극장들은 이름도 헷갈릴 정도로 수십개쯤으로 늘어났으며,
골목골목마다 예쁜 카페처럼 생긴 고깃집에 호프집, 찻집들까지 갈 때마다 변한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요즘도 가끔 공연을 보러 가거나 맛집을 찾아 대학로를 가게 되면
내가 보아온 대학로의 25년(무려!) 역사가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친다.
촌스러운 감청색 치마에 하얀 웃도리 교복을 입었던 나와 오늘의 나는 물리적인 나이 차 외엔 그닥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동숭동과 혜화동은 참 많이도 변했다.
그나마 혜화동 성당과 마로니에 공원, 문예회관과 샘터 파랑새 극장, 학림이 예전처럼
그 자리에서 거기가 변함없이 대학로임을 항변하고 있어주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동숭동에 새로이 터를 잡았다는 출판사를 찾아가느라
한낮에 동숭동과 혜화동 골목골목을 새삼 누비고 다녀보니 더욱 낯선 느낌이었는데
마로니에 공원의 아름드리 나무가 휘청휘청 바람에 가지를 흔드는 걸 보고서야
거기가 대학로였다는 게 실감되었다.
이젠 공연을 보러가는 것보다 그저 밥 먹고 차마시고 뒷골목에 자리잡은 문방구 순례를
하는 것이 내겐 더 익숙한 익숙한 대학로 탐방 절차가 되고 말았지만
앞으로도 그 거리와 골목으로 접어들면 오랜 추억 때문에라도 묘한 기분에 젖게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