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을 실천하기는 어려워도 암튼 물건 정리하기 원칙 중 1년간 안 입은 옷은 버려라, 가 정답이라는데 동의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외출을 삼가다보니 1년간 안 입은 옷을 추려낸다면 아마 절반도 넘을지 모른다. 그러니 옷 버리기는 코로나 시국에서 벗어난 다음으로 하기로 하고...

그래도 엄마옷들 중에는 1년이 아니라 3, 4년간 꺼내보지도 않은 옷들이 더러 있어서 몇 개 버리려고 꺼내놓았다가 한판 싸움이 났다. 모녀간의 싸움이라는 것이 뭐 서로에게 잔소리를 연달아 늘어놓고 반항하는 정도이긴 하지만, 엄마는 내가 안 입는 옷 좀 정리해서 버리자고 하면 꼭 "나도 갖다 버려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웃기는 건 또 내가 엄마 안 계실 때 몰래 버린 옷은 없어진 줄도 아예 모르신다는 점! 

노인들이 오래된 물건을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 자신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신다고 -- 함부로 버리지 못한다는 말은 들었는데, 아니 진짜로 어깨뽕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간 연두+주황 체크무늬 재킷 같은 건 안 버리면 대체 어쩌시겠다는 건가? +_+  그나마도 요샌 버리는 게 아니고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할 거다, 옷 수거함에 넣어두면 수출된다더라 살살 달래서 설득해 엄마의 허락을 받을 때가 많지만, 도무지 입을 일 없을 것 같은 여우털 달린 (무거운) 롱코트라든지 엄청 비싸게 장만했으나 10년도 넘게 안 입은 무스탕이라든지, 버버리 롱트렌치코트 같은 건 아직도 옷장을 차지하고 있다.

"아예 나도 갖다 버려라!"와 함께 세트로 엄마가 부르짖는 말 또 하나는 "앞으로 죽을 때까지 옷을 절대 사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그간 못 버린 옷들을 다 껴안고 계시니 옷장이며 서랍장이며 옷방에 옷이 오죽 많겠나. 그러니깐 유행 지나서, 혹은 너무 무거워서 안 입는 옷들 싹 다 정리하고 새로 갑삭하고 편한 옷들로 몇 개 새로 장만하시자고 아무리 얘길 해봐야 소용이 없다. 지금 있는 옷만 다 돌려 입어도 죽을 때까지 다 못입겠다나. 

그치만 오십대인 나도 이젠 무거운 옷 어깨 허리 아파서 못 입겠고 아무리 예뻐보여도 꽉 끼는 옷은 손이 안가게 마련인데 팔십대 노인이 무거운 옷들을 대체 어떻게 입으시겠다는 것인지... 엄마 옷 정리 문제로 싸웠다고  친구들에게  푸념했더니 역시나 그들도 깔깔 웃었다. 칠, 팔십대 엄마들 죽을 때까지 옷 안 사시겠다는 레파토리는 왜 다들 똑같으냐면서. 쳇.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작년 겨울에 편하게 입을 경량패딩을 사드렸고, 당연히 엄만 요새 가끔 병원 나들이 할 때 갑삭하니 거추장스럽지 않은 그 옷만 입으신다. 새옷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고! 어휴. 

아끼는 삶이 습관과 태도가 되신 엄마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이제 좀 그러지 마십시다. 계속 좀 누리고 사시라고요!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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