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엇 호텔 회원이라는 E언니 덕분에 여행일정 중 온천리조트에 묵은 날을 빼곤 계속 메리엇 호텔에 묵는 호사를 누렸었다. 회원가라고는 해도 대도시의 경우엔 확실히 호텔비가 비싸서 방을 한개만 빌려 4명이 같이 쓰고, 소도시에선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며 방을 2개씩 빌렸다고 했다. 잘 기억은 안나는데 방을 두개 얻었을 때도, 한 방에 4명이 묵을 때도 웬만하면 더 큰 방으로 업그레이드 해줬단 호텔측의 생색을 많이 들었고, 당연히 숙소는 매번 흡족했다.
물가 비싼 샌프란시스코에선 당근 넷이 한 방을 썼는데, 유일하게 조식이 포함되지 않았었다. 샌프란시스코 인심 야박하다고 투덜거렸지만 뭐 그래서 느긋하게 일어나 따로 브런치 먹으러 다닌 것도 좋은 추억이었다. ^^;
전날 600km 넘는 거리를 (서울-부산 거리가 450km라는 듯) 거의 홀로 운전하다시피한 E언니를 쉬게 하는 의미에서 담날은 늦게 일어나 10-11시쯤 브런치를 먹으러 가자고 의기투합을 했다. 문제는 늘 5시면 일어나 6시에 출근하는 습관을 들인 부지런한 나의 친구 S와 시차적응에 실패한 내가 새벽 6시도 못 넘기고 일어나버렸다는 것. ㅋㅋ 호텔 로비에 스타벅스가 있길래, 그럼 내려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있자고 했더니만 방에 커피드리퍼가 있는데, 그리고 어차피 아침 먹으러 가서 커피 마실 건데 왜 굳이 또 사마시냐고 친구가 타박... +_+ 정말로 호텔방엔 옛날식 커피메이커가 아니라 1회용 전기 드리퍼와 함께 테이크아웃용 종이컵과 뚜껑까지 완비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그러고도 로비에 따로 커피 머신과 주스 테이블이 있어서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곳도 있었다. 완전 좋아라... 사진을 열심히 찍는다고 찍었는데 돌아와서 1인용 전기 드리퍼 사진은 죄다 삭제해버렸음을 깨달았음. 에고...
암튼 잠시 호텔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출근하는 사람들 구경도 하고, 로비 소파에서 친구와 둘이 각자 휴대폰 놀이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가 드디어 언니들이 방에서 내려와 브런치를 먹으러 두 블럭쯤 걸어갔다.
역시나 YELP의 추천으로 골라 간 브런치 음식점은 SOMA EATS라는 곳.
원래 시키려던 메뉴가 있었는데 갓 구워나온 빵도 맛있어 보인다면서 이것저것 언니들이 알아서 주문을 하고, 친구와 나는 얼른 넷이 앉을 수 있는 자리를 잡았다.
의외로 늦게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딱 떨어지는 정장을 입은 남녀들이 각기 홀로 들어와 테이블을 잡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는 맛있었지만, 근데 여기가 왜 그렇게 유명하다는 거지? 잉글리시머핀과 부리토, 요거트, 크루아상이 맛있어봤자지..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ㅋ 넓은 유리창으로 찬란한 햇빛이 들어오는 분위기는 그래도 엄청 마음에 들었었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이름을 딴 상호도 멋지고...
관광객 역할에 충실하느라고, 나중에 아침 먹고 나와서 저 하늘색 의자에 앉아 똥폼잡으며 독사진도 찍었다. K언니가 다짜고짜 빨랑 가서 앉으라고 하심;; ㅋㅋ
난 아무래도 음식사진에 심혈을 기울이는 정성이 부족하다. ㅋㅋ 사람들 못 먹게하고 사진부터 찍는 거 너무 민망해서리... 암튼 그래도 호텔조식 아닌 브런치라 사진으로 남겼음.
좀 조촐하게 보이는 건, 곧 점심을 해산물로 거하게 먹을 거라 배를 많이 채우지 않는 작전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먹다보니 결국 배불러서 오른쪽 페스트리는 싸가지고 감;;
부른 배를 두들기며 호텔로 다시 걸어가 짐을 마저 챙겨 체크아웃을 한 뒤 차로 움직인 곳은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아이리시커피가 유명한 부에나비스타 카페.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이때부턴 오후 내내 해변을 걸어다녔다.
바 자리에 앉으면 눈앞에서 저 아저씨가 아이리시커피를 제조해 곧바로 내밀어주는데, 우왕.. 위스키가 꽤 많이 들어간다. 술에 약한 친구는 아침부터 길바닥에 쓰러질 수 없다면서 술 없이 그냥 각설탕만 넣고 생크림을 부은 걸로 만들어 달랬다.
완성된 아이리시커피는 요로케 생겼다. 수년전 대한항공 광고에도 나왔다나 뭐라나... 암튼 뱃사람들이 바다에 나가기 전과 후에 몸을 후끈하게 만들려고 마셨다는 것 같다. 뜨거운 커피를 유리잔에 담아 마시게 된 연유가 뭘지 궁금하지만 아직 검색 안해봄. ㅎㅎ
각설탕이 이 한잔에 세개가 들어가던가... 근데 위스키도 많이 들어가고 커피도 진해서 엄청나게 단 느낌은 없고 독특한 향이 좋았다. 작년이 딱 카페 설립 100주년이라서 뭔가 큰 행사가 있었다는 것 같았음.
오전부터 사람들이 드글드글, 우리처럼 바에서 아이리시 커피만 먹는 사람들 말고도 본격 테이블에 앉아 다른 브런치 메뉴 점심 메뉴 시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아침부터 알딸딸한 기분으로 카페를 나와 언덕 아래로 걸어가니 곧장 <피셔맨즈워프(Fisherman's Wharf>라고 하는 관광지가 나왔다. 굳이 번역하자면 어부의 부두? ㅋㅋ 예전엔 수많은 부두가 번호별로 줄줄이 이어져 있었겠지만 지금은 실제로 배가 와 닿는 곳은 얼마 없고 죄다 부두 창고들을 음식점과 상점, 마켓 같은 걸로 변신시켜 놓았다. 아침에 호텔을 나설 땐 으슬으슬 춥기까지 하더니만, 정오를 넘기면서 햇빛이 엄청 뜨겁고 기온도 올라가 선글라스를 쓰고도 눈이 부셔 걸어다니며 헉헉거렸다. 부두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1시간도 넘게 걸은 듯...
트롤리라고 하던가.. 전차말고도 저런 관광용 버스가 많이 돌아다닌다. 너무 햇빛이 찬란해서 오히려 풍경이 어둡게 나오는 효과?? 흐린것처럼 나왔지만 진짜 눈부신 날씨였다.
왼쪽 사진에 멀리 보이는 다리는 아마도 베이브릿지? 그리고 오른쪽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 종종 본 기억이 있는 7번 부두... 끝까지 걸어가보고 싶었으나 언니들이 가봤자 별거 없다고 말렸다. ^^; 햇빛이 너무 뜨겁지 않았더라면 아마 고집부려서 가봤을지도 모르겠는데, 난 이날 하필 올블랙 긴팔 패션이라 겉옷을 벗어 허리에 묵고도 더워서 삐질삐질 땀을 흘렸다. 아침만해도 추웠거든!! 점심시간에 바닷가에서 조깅하는 여자들은 죄다 탱크톱 차림이었다. +_+
팬 서비스(?) 차원에서 특별히 부두에서 까불거리는 독사진도 공개한다. ㅋㅋ 하도 독사진 찍으라고 난리여서 멀리 찍는 조건으로 뻘쭘하니 난간으로 가 섰다가 갑자기 용기와 광기가 솟으면서 재미난 사진을 남기고 싶어졌었다. 그냥 가만히 서 있으면 정말 팔다리와 표정을 어떻게 해야좋을지 몰라 얼어붙기 때문에 ㅠ.ㅠ (그치만 클릭해도 안커집니다 ㅎㅎ)
아.. 정말 이날 하늘과 구름이 환상적으로 아름다웠다. 공기는 또 얼마나 맑은지.. 바닷가인데도 비릿한 바다 냄새가 안나는 게 신기했다.
유기농 재료로 만든 여러가지 먹거리들을 파는 마켓에선 사고픈 물건들이 많았지만 짐되니깐 나중에 나파에서 사라고 E언니가 뜯어말렸다. 하지만 기어코 나는 여기서 치즈 강판을 얼른 사 가방에 넣고 다녔다는;; ㅋㅋ 어딜 가든 회전목마만 보면 타지 않아도 그저 좋아라... 저 뒤쪽에선 마술도 하고 서커스도 하는 어떤 나이든 아저씨가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어찌나 눈물겹게 열심히 하는지 구경한 값을 한 5달러쯤 모자에 넣어주고플 정도였다. 맘 약해진 내가 들먹들먹하는데 친구가 한 마디 했다. 야, 저 사람 너보다 돈 열배 스무배는 벌 걸. ^^; ㅋㅋㅋ
걷고 또 걸어서 배를 약간 꺼뜨리는데 성공한 우리는 드디어 해산물을 먹으러 들어갔다. 싱싱한 게찜과 빵에 담긴 클램차우더, 오징어튀김이었는데.. 사진은 게찜만 남은 듯. (사실 나는 먹느라 바빴고 사진 잘찍으시는 K언니의 작품 넘겨받은 거다)
우리나라에서도 대게 먹으러 강원도엘 가보면, 살아있는 게를 쪄주는 데가 있고 (짜지 않고 살이 달콤한 대신 훨씬 더 비싸다) 죽은 게를 쪄주는 데가 있었다(저렴한 반면 엄청 짜다). S는 지난번에 부모님 모시고 여행왔을 때 게찜이 엄청 짰다며 걱정했으나, 게가 많이 잡히는 계절인지 별로 짜지 않고 맛있었다. 물론 게을러서 게살 발라먹는 거 싫어하는 나는, 여행을 왔으니 신나게 한번 먹어주긴 하겠지만 굳이 이렇게 수고롭게 먹어야하는 음식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굳혔다. 물론 속으로! ㅋㅋ
오징어가 아니고 꼴뚜기를 튀긴 것 같은 칼라마리 프라이는 어쨌거나 싱싱하고 맛있었고, 클램차우더도 훌륭했다.
부두 카페에서 또 다시 아이스크림과 커피를 마신 뒤엔 주차장에서 차를 찾아가지고 Palace of Fine Arts로...
19세기말 세계박람회장으로 쓰였던 공간의 일부만 남은 유적지라는 거 같다. 유럽의 문화와 과학기술에 뒤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나 뭐라나... 왼쪽 사진에서 홀로 걸어나오는 사람이 바로 나의 친구 S다. ㅎㅎ 곳곳에 새겨진 부조와 조각상들이 꽤나 훌륭했는데 더욱 멋졌던 이 주변의 고급 주택들이었다.
과거의 흔적만 남은 '유적'은 아무래도 쓸쓸함과 허무함이 필연적인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또 다시 금문교로 향했다. 우리나라에도 길고 높은 현수교가 워낙 많이 생겨 딱히 신기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는 그 옛날 수많은 중국인 노동자들의 목숨으로 건설된 거란 얘기를 처음 갔을 때 들었던 것 같다. 진부하긴 해도 샌프란시스코에 왔는데 제일 유명한 랜드마크를 안 거칠 수야 없지. ㅋ
다리보다도 양떼구름이 더 신기하닷! 막 이러고 있었는데 마침 소공원 한 귀퉁이에서 금문교를 그리는 아주머니? 할머니? 화가를 발견했다. 아마추어든 아니든 그림 그리는 사람 멋지구리... @.@ 이런 눈으로 잠깐 구경하며 흐뭇했다.
또 신기했던 건 금문교 전망공원 진입도로 바로 옆에 있던 통나무집들... 이런 관광지와 도로 한복판에서도 아직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나? 시에서 사들여서 그냥 볼 거리로 운영하고 있는게 아닐까 궁금했다. 정원에 꽃도 심어놨던데...
하여간에 우린 저 빨간색 금문교를 건너,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만 건너편에서 바라볼 수 있는 소살리토(Sausalito) 들어갔다. 휴양지 느낌 물씬 풍기는 바닷가 언덕 리조트 마을이라고 해야하나... 원래도 샌프란시스코에선 한 1, 2년 살아보고 싶단 생각을 갈 때마다 했었는데, 돈 걱정 안해도 된다면 소살리토에 별장을 하나 장만해 살고프다고 결론 내렸다. 시선 닿는 곳이 다 예뻐!
다만 이미 이쪽방향이 해 반대편으로 들어간 터라 사진이 죄다 어둡게 나왔다. 힝...
그날의 예쁜 마을 풍경은 그저 마음에만 들어있을 뿐.. 기억에서도 벌써 많이 사라진 듯하다. 암튼 우린 바닷가 2층 레스토랑에 올라가서 양해를 구하고선 (바닷가쪽 테라스 테이블에서 저녁 안 먹고 20분만 칵테일 마시고 나오겠다고;;) 진짜로 칵테일 마시며 분위기만 잔뜩 잡고 누리다가 저녁은 딴 데 가서 먹었다. ^^;
우리가 앉은 자리에선 이런 풍경들이 보였다..
왼쪽 사진에선 흐릿하게나마 샌프란시스코 다운타운의 스카이라인이 보이지 않나? ㅋ
테라스 자리에서 20분만 노닥거리겠다고 양해를 구했지만 칵테일 넉잔이 다 나오는데만도 30분쯤 걸렸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1시간 다 되도록 풍경 감상하다가 6시반쯤 아쉬운 마음으로 소살리토를 떠났다.
친구가 종일 춥다고 덜덜 떨었던 터라 저녁은 뱃속 뜨끈하게 해줄 일본식 라멘을 먹기로 했으므로, 중간에 산라파엘이라는 마을인지 소도시에 들러, 역시 옐프가 추천해주는 Uchiwa라는 집에서 라멘을 먹었다.
사진은 대표로 내가 먹은 거 한장만 찍음. ^^; 라멘에 웬 옥수수? 이런 느낌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아스파라거스랑 숙주까지 다 느끼한 맛 잡아주어 좋았고, 메뉴에 김치도 있어서 반가워하며 2 접시 시켰더니만 조만큼씩 나와서 기록감이라며 사진을 찍었다. 저게 아마 3달러였던 듯. ㅋㅋㅋ 미국 음식점이 확실히 1인분 양은 엄청난 편이지만, 반찬 인심 같은 건 절대 기대하면 안된다.
저녁을 먹고는 다음날 온천리조트가 있는 애슐랜드로 가기 위한 거점이랄까, 딱 잠만 자고 떠날 요량으로 페어필드에 있는 메리엇 호텔에 체크인하는 것으로 긴 하루 일정이 끝났다.
아늑한 호텔방... 침대가 어찌나 큰지 친구랑 나랑 한 귀퉁이씩 차지하고도 중간에 한명 더 눕혀도 될 것 같은 느낌인데, 이날은 방이 2개라 이 넓은 침대에서 각자 따로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