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새해 들어 첫 전시관람은 훈데르트바서. 기대한 만큼 좋았다. 동화나라처럼 보이는 건축모형에선 가우디가 떠오르기도 했고 현란한 색감에선 얼핏 클림트 그림도 연상됐던 것 같다. 후기를 쓴다쓴다 미루다가 벌써 보고온지 한달도 훨씬 넘어 감흥이 가물가물 기억도 잘 안나지만 ㅠ.ㅠ 그나마 초기라서 사진 촬영도 허용해주었고(입소문 홍보용인지 요샌 초반에 작품 촬영 허용하다가 나중에 금지하는 전시 많은 것 같다) 마침 도록도 사온 터라 뒤적여가며 밀린 숙제를 해봐야겠다. 그날 만났던 그림들을 떠올리는 순간에는 다시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놈의 허영심은 암튼...
상당히 많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역시나 기억에 많이 남는 건 주최측에서 '밀고 있는' 작품인듯. 사랑하는 여인에게 30일에 걸쳐 매일 fax로 보낸 그림을 이어붙인 작품이 있었다. 이름하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 멀리 외국에 나간 연인이 매일 연서와 함께 이런 그림 보내주면 엄청 감동하지 않을까? ㅎㅎ 근데 나처럼 의심 많은 인간은... 나중에 작품 만들 욕심에 팩스 보낸 거 아니냐고 괜히 따지고 들지도 모르겠다. +_+ 그러거나 말거나 정성은 대단한 것이여..
30일간의 팩스 페인팅
이렇게 천진난만한 느낌의 그림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색감은 또 얼마나 찬란한지...
전시실마다 벽 색깔을 확확 달리 해놓았던데, 진회색, 진보라색, 주황색 같은 배경과 작품들이 잘 어우러지는 것 같았다. 대충 찍어도 막 화보같다고 자화자찬.. ㅋ
정식으로 건축을 공부한 적이 없다는데도 도면을 그리고, 또 그대로 건물이 지어지고 그런 사람에게 각 나라에서 큰 프로젝트를 맡기고... 우리나라에선 불가능한 일이겠지 싶어 더 대단하게 여겨졌음. 예로부터 건축가들은 흔히 반듯하지 못한 것을 잘 못견딘다고 하던데.. ㅋㅋ 가우디도 그렇고 훈데르트바서도 그렇고, 동대문디지털플라자를 설계했던 자하 하디드도 그렇고 이젠 곡선이 대세인 것도 같고... DDP도 우주선 같은 건물 뒤쪽으로 돌아가보면 길게 경사진 잔디밭이 나오는데, 지표면과 길게 사선으로 이은 건물 지붕을 풀밭으로 정원으로 꾸민 훈데르트바서 건축물들 실제로 구경해보고 싶다. 창문권리라던가.. 나무 권리라던가.. 암튼 용적률따위 개나 주라는 듯 친환경적인 독특한 건물들을 많이도 지었단다. 실제로 열렬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했고.
호주에서 폐 유리병으로 집을 지어 환경 친화적인 삶을 이어가기도 하고, 평생 환경운동가로 활약했기 때문에 지구를 지키자고, 대중교통 이용하고 빗물 활용하자고 호소하는 여러가지 포스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주제도 <그린 시티>.
화가가 비오는 날씨를 특히 좋아했기 때문에 빗방울 모티프가 그림에 많이 등장했던 것 같다. 나도 비 좋은데! 그러면서 괜히 반색했음..
몇년 전 예술의 전당 전시회 때 가장 인기가 높았다는 <노란 집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어린이 참여 프로그램도 많던데.. 나 역시 언제 한번 스케치로 따라 그려보고 싶은 작품이다. ㅎ
노란 집들 - 함께 하지 않는 사랑을 기다리는 것은 아픕니다(Yellow Houses: It hurts to wait with love if love is somewhere else)
작품 부제를 읽고 보니... 저게 빗방울이 아니라 죄다 눈물방울이었어.. ㅠ.ㅠ
일본 여자를 애인으로 두었다던가.. 일본 목판화의 영향도 많이 받았고, 아예 백개의 물(百水)라는 호(?)를 정해 낙관도 찍은 작품이 많다. 백개의 물은 멋있으나 '백수'는 좀 웃김 ^^;
타오르는 물, 1991
브로를 위한 모자, 1994
예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이 드글드글한 가운데 색감이 예뻐서 찍어온 그림 두 점.
<타오르는 물>은 방콕 빌딩 꼭대기에서 그렸대고 물과 불을 서로 반대로 표현했단다. 오른쪽 그림의 주인공인 브로는 친구이자 스승인데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했다고... ㅠ.ㅠ 사진 찍을 땐 그냥 예쁘단 생각 뿐이었는데 도록 읽은 뒤 다시 보니 파란 입술과 표정이 슬프게 느껴진다.
클림트, 에곤 쉴레, 그리고 훈데르트바서의 작품들(특히 건물 ㅠ.ㅠ)을 직접 보러.. 오스트리아게 가야겠군! 그런 생각을 하며 전시장을 나왔다.
3월 1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전시하고 관람료는 15000원. 도록은 3만원이다. 공식 포스터가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비교적 저렴하게 느껴진 도록을 사온 건 좋았지만, 저렴한덴 다 이유가 있는 건지 인쇄 질감과 색감이 대체로 좀 어둡고 푸르딩딩한 기운이 많이 느껴진다. 화려번쩍한 오리지널 엽서는 막 한장에 5천원씩 했던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 인쇄술 뛰어나다고 하지 않았나? 쳇.. 실망이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