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력장 다음날 느껴지는 온몸의 뻐근함을 다들 기억하는지.
분명 체육시간마다 미리 100미터 달리기며, 윗몸 일으키기, 공던지기, 매달리기 따위의 연습을 시켰을 터인데도
몸과 머리의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뇌에서 시키는 일을 팔다리가 제때 힘써 해내지 못하는 치명적인 결점을 지니고 있는 나는
본격적으로 체력장을 하고 난 다음날, 늘 배가 당겨 누웠다가 일어나기가 거북하여
으아... 엄살 섞인 신음을 내뱉었고,
허벅지며 뒷다리가 당겨 계단을 오르내기기가 불편한 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몸을 움직이다
장난스런(그리고 운동신경이 뛰어나 뻐근함이 거의 없거나 덜한) 친구들이 일부러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리닫으면, 으아악... 비명과 까르륵 웃음을 함께 터뜨리느라
당기는 뱃가죽이 더 아팠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온 몸을 불살라가며 체력장에 힘썼어도 중고등학교 시절 체육점수는 '미'를 벗어나는 일이 드물었기에 더욱 슬프고도 처절한 기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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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부터 이미 허벅지가 심히 당김이 느껴져 이거 마치 체력장 한 다음날 같군..
생각했더니 역시나.
오늘 일어나니 뱃가죽까지 심히 당겨, 쿡쿡 웃음이 난다.
미루어 짐작되는 원인은 두 가지.
하나는 어제 아침 같은 동네 사는 조카 유치원에서 있었던 '거북이 마라톤 대회' 구경에
늦는 바람에 헐레벌떡 500미터쯤 되는 거리를 달려가야 했던 것.
중고등학교 시절 각각 600미터와 800미터 오래달리기를 하고나서 늘
양호실에 실려가거나, 하늘이 노래지는 걸 느끼며 친구 다리 베고 땅바닥에 누워 있곤 했던
전적을 떠올리면, 어젠 그 뒤에도 멀쩡히 사진 찍겠다고 촐싹댄 게 신기할 정도다.
앗.. 그러고 보니, 몇년 전 거금 들여 마라톤화 사들인 뒤
매일 동네 개천변 산책로에 나가 남들 걷는 속도로 달리기를 시도했던 효과가
어느 정도 남아있는 겐가??
아무튼 다행히 행사가 지연되어 늦지는 않았지만.. 달리는 조카 사진 찍어준다고 덩달아 이리저리 뛰어다닌 것도 역시 운동부족이 심한 나에게는 무리가 되었을 듯.
다른 하나는 난데없는 총각김치 담그기. ㅡ..ㅡ;;
어제 하남시에 전원주택 짓고 살며 텃밭도 가꾸시는 외삼촌이 총각무를 뽑아 갖고 오시겠다
하였을 땐, 살짝 염려가 되긴 해도 구체적으로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줄 차마 모르고 있었는데... 예쁘게 다듬기까지 하여 가져오신 총각무를 보니, 거의 김장수준이더라.
해서.. 어젯밤, 총각무를 한시간 반에 걸쳐 하나하나 수세미로 씻고
큰 플라스틱 통에 켜켜로 앉혀 굵은 소금에 절여놓았는데,
난생처음 김치 담글 걱정을 하고 잠이 들었기 때문인지
일어나고 보니 온몸이 체력장 다음날 같았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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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손놀림도 잘 안되고, 게다가 요새 좀 편찮으신 엄마 대신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펑펑 치기는 했지만..
좀 걱정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닌데 ㅎㅎㅎ
인터넷으로 찾아본 레시피와 엄마의 조언대로 찹쌀풀까지 쑤어서
방금 총각김치를 버무려 통 세개에 나눠 담아 베란다에 내다놓았다.
느낌은 버얼써 성공한 것 같지만
과연 어떤 맛이 나와주려는지... 진짜 성공여부는 얼마 후에나 알 수 있겠지.
체력장 후유증 같은 이 뻐근함이 다 풀릴 무렵, 맛있게 익은 총각김치를 먹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