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달치 걷기

삶꾸러미 2007. 5. 2. 14:56
어젠 근로자의 날을 맞아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후배의 소집을 받잡고 난생처음 하늘공원엘 올라갔다.
(마라톤도 하는 이 친구는 우릴 만나기 전에 먼저 10km를 뛰었다고 했다 *_*)
그 아래 월드컵공원까지 간 적은 몇번 되었지만
나만큼이나 걷기를 꺼려하는 지인들이 많다보니, 뭘 굳이 올라가느냐면서 늘 되돌아왔는데
어젠 아예 홈에버에서 먹을것까지 잔뜩 사가지고
낑낑대며 지그재그로 뻗은 계단을 올라가 정자에 자리펴고 앉아 소풍기분까지 낼 수 있었다.

해마다 억새축제 할 때마다 은근히 가고싶다는 바람을 토로하는 엄마의 얘기를 귓등으로 흘리며 "축제 같은 거 할 땐 사람 많아서 구경도 못한대!"라고 퉁박을 주었는데
비온 뒤 흐린 날의 다저녘때라 사람들도 거의 없고 가끔씩 꿩소리만 사람을 퍼뜩 놀래키는 그곳이 제법 쓸만했다.

서울에서 무엇보다도 전깃줄하나 시야를 가리지 않는 하늘과
지평선 같은 너른 초원을 볼 수 있다는 게 어딘가!
게다가 억새와 다른 식물들이 자라기 이전의 황량한 들판엔
민들레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떼를 지어 터를 잡고 있었다.

남들은 하늘공원, 하면 다들 억새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나는 아마도 하늘공원, 하면 앞으로 민들레밭이 떠오를 것 같다.


280개가 넘는다는 (어느 꼬마가 가르쳐주었다) 계단을 오르고 너른 들판을 이리저리 걸어다니고 다시 월드컵 공원을 가로질러다녔으니, 어제 예상했던 대로
오늘은 뒷다리가 당기고 허리도 좀 뻐근하다.
여실한 운동부족에 민망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어제 간만에 두달치 걸어다닐 걸 한꺼번에 다 해치우듯 많이 돌아다녔으니 한 이틀쯤은 내 몸한테 덜 미안해도 되는 게 아닐까. -_-;;

어쨌든 눈가리고 아웅식이라 해도
하늘공원이 된 난지도의 변신은 놀랍다.
아주 오래전, 난지도가 아직도 쓰레기 하치장이었을 때 그곳에서 폐품을 주워 살던 이들의 천막촌에 간 적이 있었다. 성산동 일대부터 이미 악취가 나서 나는 그만 얼굴이 일그러졌는데
그들은 거기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넝마를 줍고 파리가 마구 날아드는 부엌에서 밥을 해먹고 있었다.

난지도가 하늘공원으로 개발되면서 그들은 어디로 가야 했을까, 어제 잠시 궁금했는데
나는 또 그냥 아메바처럼 탁 트인 하늘과 연초록 이파리와, 하얗게 핀 조팝나무 꽃을 보며 헬렐레 좋아서 금세 그들을 잊어버렸다.

난지도와 쓰레기장 천막촌 사람들
하늘공원과 민들레밭
이 둘은 같은 공간이면서도 참 다르다.
그러고 보면 나도 그 옛날과는 다른 사람인가.

암튼 5월 첫날.
나로선 참 많은 일을 했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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