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나름 파란만장했던 첫 출장의 기억이 떠올랐다.
뉴욕에 대한 긴긴 로망을 품게 된 최초의 경험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땐 정말 빨리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죽을 뻔했었다.
때는 호랑이 담배피우던 시절에 가까운 듯한 1990년.
길고 지루할 것 같으니 more 기능으로 ㅋㅋ
미국 최대의 범죄도시였던 뉴욕을 안전하고 깨끗한 곳으로 만들겠다고 부르짖었다는
저 유명한 줄리아니 시장이 활약하기 전이었다.
평생 코피라는 걸 모르고 살던 내가
난생처음 코피를 주르륵 흘렸을 만큼 하루하루 고된 본사 출장 일정이 이어졌고,
경비절감보다는 "순전히 안전과 음식 문제를 해결해주기 위함"이라며 극구 직원 둘을
자기 집에 데려다놓고는 퇴근 후와 주말에도 악착같이 일을 시켜먹던 한국인 부사장 덕분에 한달 내내 나는 기사 딸린 기다란 검정 리무진이나 벤츠를 타고
브로드웨이로 출퇴근을 했으되, '관광'이란 건 꿈도 못꾸는 처지였다. ㅠ.ㅠ
그러다 귀국을 일주일 앞두고 두둥... 부활절 연휴가 다가왔다.
인종차별과 함께 거의 노동력 착취를 당하던 나를 불쌍히 여긴 디자이너 아저씨가
(이 아저씨 한국 왔을 땐 하얏트 호텔에 묵게 하고 저녁마다 지사 직원들이 돌아가며 놀아주고, 지사장 명으로 주말에도 내가 밀착 보필하며 관광시켜주고 그랬는데!!)
딱 하루만이라도 나를 자기네 집에 데려가서 재우겠다고 총대를 매고 나섰다.
물론 우리는 부활절 연휴동안 최대한 놀아볼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나를 딸처럼 염려한다는 재수없는 한국인 부사장을 디자이너 아저씨가 애써 설득하고 만류한 끝에 우린 드디어 해방감을 만끽한 채 좀 일찍 퇴근을 하고 브로드웨이를 걸어갔다.
기다란 트렌치코트자락 휘날리며 멋지게 택시를 잡거나 거리를 걸어다니는 모델 같은 남자들이 어찌나 많은지 *_* 나는 완전히 넋을 잃고 완전 관광객 모드로 접어들어
디자이너 둘을 따라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는데...
허걱...
마냥 걷다가 느낌이 이상해서 돌아보니
내 바로 뒤에 흑인 둘이 바짝 따라붙어 있고, 한 사람은 내 가방에 손까지 넣은 상태였다.
아무런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꺅~~~~~~~" 비명을 질렀고
약간 앞서가던 동료 직원 둘이 뒤를 돌았다.
동시에 소매치기들은 후다닥 달아났는데, 얼어붙은 듯 제 자리에 서서 벌벌 떠는 나에게
두 뉴요커가 천만다행이라고 위로를 해줬다.
소매치기한테 그런 상황에서 소리 질렀다간 총이나 칼을 맞을 확률이 절반인데 운 좋았다면서...
그럴 땐 그냥 가방째 던져주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었다. -_-;;
아마도 나를 노렸던 소매치기가 초짜였거나 내가 좀 일찍 사태를 파악한 듯
다행히 잃어버린 물건도 없고 지갑도 안전했지만, 그날은 벌벌 떨리는 가슴이 진정이 안되는 바람에 저녁만 얼른 먹고 집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음날 아침은 센트럴 파크 및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따위의 코스로 뉴욕을 돌아보기 전에
먼저 강건너 뉴저지 병원에 계신 디자이너 아저씨의 아버지 병문안을 가야 하는 처지라
차를 타고 다녀야 했는데, 전날 밤 분명 아파트 앞 도로에 세워져 있던 지미(디자이너 이름)의 자동차가 온데간데 없었다.
ㅋㅋㅋ
처음엔 도둑 맞은 건가보다며 펄펄 뛰었는데, 아파트 앞에 세워뒀던 자동차들이 깡그리 없어진 것으로 보아 단체로 견인된 것 같다는 결론이 내려졌고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밤시간과 주말에는 주차가능하던 거리가 온종일 주차금지 거리로 바뀌었다는 표지판을 발견했다.
요즘 우리나라처럼 친절하게 견인후 안내 스티커를 땅바닥이나 가로수에 붙여놓는 배려 따윈 절대 없었다. (지금은 어쩌려나 모르겠군;;;)
그래서 우린 다시 아파트로 올라가 모든 견인차 보관소에 전화를 걸어서
지미의 자동차 번호를 대며 혹시 거기 끌려가 있는지 확인을 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자동차 열쇠까지 사라져, 지미 아저씨의 애인이 갖고 있던 자동차 열쇠를 가지러 지하철을 타고 맨해튼을 벗어나야 했다. ㅠ.ㅠ
아아...
지금은 달라졌다지만, 90년에 타본 뉴욕의 지하철은 정말로 무섭고 섬뜩했다.
역사마다 어지러운 그래피티가 가득했고 쓰레기더미나 다름없었을 뿐만 아니라
죄다 약먹은 표정의 무시무시한 사람들만 드문드문 지하철을 타고 다니더군.
지하철 표값 아끼느라 나더러는 개찰구밖으로 나오지 말고 안에서 기다리라고 하곤
지미가 혼자서 애인 집에 다녀오는 대략 20분 동안
나는 그야말로 공포에 벌벌 떨며 서 있어야 했다.
전날처럼 모든 이들이 다 내 가방만 노리는 것 같은 착각도 들고;;; ㅠ.ㅠ
암튼 견인당한 차를 찾으러 가고, 견인 위험이 없는 거리에 다시 차를 가져다 놓고
(고풍스런 건물을 내부만 고쳐 아파트로 만든 지미의 아파트 건물엔 아예 주차장이 없었고, 맨해튼에 더러 있는 주차타워엔 주차비용이 워낙 비싸 엄두를 내기 힘들다고 했다)
뒤늦게 병문안을 가고 자시고 하느라, 나의 관광 계획은 또 다시 무산되어
결국 나는 첫 출장에서 jfk 공항과 브로드웨이 1405빌딩(주소도 잊혀지질 않는다 ㅠ.ㅠ), 그 주변의 음식점 몇군데, 뉴저지로 통하는 기다란 터널과 다리를 구경한 걸 끝으로 집에 돌아와야 했다.
물론 차창 밖으로 잠깐씩 본 브로드웨이 거리며, 센트럴파크 일부가 황홀하게 멋지긴 했지만 그땐 관광이고 뭐고 한시바삐 집에 가고 싶었다.
뉴욕은 정말 살 곳이 못되는구나 싶었던 것.
그런데 몇년 뒤에 갔을 땐 많이 달라진 게 눈에 보이더니
98년인가 마지막으로 갔을 땐, 한밤중에 뉴욕 거리를 걸어다니며 술을 마셔도 제법 안전할 만한 곳이 되어 있었다. ^^*
그리고 그때 역시 출장의 성격이긴 했어도 내 마음대로 뉴욕을 돌아보며 옛친구도 만나고
관광다운 관광을 할 여유도 누렸다.
하지만 학창시절 '양키고홈'을 외쳐대던 분위기속에 싹튼 반미주의와 더불어
(그러면서 미국 회사엔 왜 취직을 해갖고 인종차별을 겪었는지 원;;) 내가 처음 겪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이 워낙 컸던 탓에
지금도 미국은 내게 美國이 아니라 未國이다.
마지막으로 다녀온지 벌써 10년이 다 되고 보니 뉴욕에 대한 로망이 아직 있긴 하지만,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다른 유럽도시가 먼저이고
까짓거 뭐 뉴욕엘 다시 못간다 해도 별로 억울할 것까진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벨로가 쌘이 만나고 뉴욕도 간다니 부러워서 옛날 생각 했으면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