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부를 드러내고도 불편하지 않을 친구가 몇명이나 되겠냐는.." 미아의 댓글에
또 댓글을 달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블로그 화면을 바라봤다.
으음...
내 인간관계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을 지금 눌러 그룹별 검색을 해보니
친구 항목에 무려 51명이 들어있단다.
물론 그 친구 항목엔 10여년 넘게 얼굴도 못 본 채, 통화만 몇번 한 그야말로 이름뿐인 친구도 들어있으며,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친구로 생각하는 선배나 후배도 포함되어 있으니, 친구 많다는 자랑을 하려는 건 절대로 아니다.
미아 말대로 그 가운데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홀라당 까발려서 보여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친구를 쏜꼽으려면 또 한참 걸려야할 테니까.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친구에 대한 내 마음가짐은 그렇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드러내기가 어디 쉬운가.
내 경우는 가능한 한 처음부터, "난 원래 이러이러한 인간이니 싫음 말고 좋으면 어울리고 알아서들 하셔.." 라는 잘난 체를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함께 세월을 보내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나하나 드러운 성질, 치욕적인 약점, 취향 따위를 드러내게 되는 게 당연하고
그걸 최대한 받아들여주거나, 수용은 못해도 최소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관계가
친구라는 테두리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휴대폰 친구 폴더에 저장된 이들은 모두가 내게 이상적인 친구의 가능성을 지닌 후보자라는 뜻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과 만남의 깊이에 따라
아직은 "후배"나 "동창", 또는 "미지정" 폴더에 들어 있는 이들도 언젠가는 "친구" 폴더에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고, 몇년 후 "친구" 폴더에서 "동창" 폴더로 내려갔다가 슬며시 전화번호부에서 삭제될 친구도 있을 것이다. 아니지.. 삭제될 만큼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면, 전화를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번호를 삭제는 못하겠군 -_-;;
암튼 내게 친구의 범주란...
지난 40년의 세월을 속속들이 이미 알고 있는 친구도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 삶의 연이 닿질 않아 깊은 속내를 드러내놓고 상처를 같이 쓰다듬을 기회는 없었으되, 혹시 그럴만한 때가 되면 깊이 공유할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된다.
물론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자 턱도 없는 기대감일 수도 있으니, 몽상가스러운 나의 친구 개념을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그렇게 믿으련다.
아메리카인디언의 속담이라던가.
친구는 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
가슴이 찡했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친구라면, 친구가 살인을 했더라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해주는 마음을 갖는 거라는(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던 듯..) 얘기에도 돌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두 경우 모두 퍼뜩, 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갈 친구는 내게 몇명이나 되나..
극단적으로 내가 살인을 했을 때 내 편이 되어줄 친구는 몇명일까 손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반대의 경우에도 내가 과연 그 친구들에게 선뜻 친구라고 나서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란 사람은 관계에 늘 집착하고 꿈과 환상을 품고
그래서 또 상처받고
다행히 위로도 받고 그러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 같다.
다분히 인간집착적인 성격이랄까...
하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져서, 이젠 부동산과 애들 교육에만 열을 올리는 흔한 아줌마가 되어버려,
아직도 문방구 학용품과 잘생긴 남자배우에 열을 올리는 나와는 대화의 공감대가 사라져
어느새 많이 멀어졌다 느끼게 되는 사이라 해도
모든 걸 다 떨치고 나서 오롯이 혼자만 남게 되는 본원적인 상태에선 다시 친구임을
깨닫게 되기에
가끔씩 배신감에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게 되더라도
내게 가장 소중한 재산은 여전히 사람이라고 믿는다.
친구들이여, 앞으로 계속 추한 꼴 보이더라도 제발이지 너그러이 봐주게나.
나 또한 그러도록 노력함세.
또 댓글을 달고 나서도 한참 멍하니 블로그 화면을 바라봤다.
으음...
내 인간관계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는 휴대폰을 지금 눌러 그룹별 검색을 해보니
친구 항목에 무려 51명이 들어있단다.
물론 그 친구 항목엔 10여년 넘게 얼굴도 못 본 채, 통화만 몇번 한 그야말로 이름뿐인 친구도 들어있으며, 저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나이와 상관없이 내가 친구로 생각하는 선배나 후배도 포함되어 있으니, 친구 많다는 자랑을 하려는 건 절대로 아니다.
미아 말대로 그 가운데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홀라당 까발려서 보여주고도
아무렇지 않은 친구를 쏜꼽으려면 또 한참 걸려야할 테니까.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친구에 대한 내 마음가짐은 그렇다.
처음부터 모든 걸 다 드러내기가 어디 쉬운가.
내 경우는 가능한 한 처음부터, "난 원래 이러이러한 인간이니 싫음 말고 좋으면 어울리고 알아서들 하셔.." 라는 잘난 체를 보이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결국엔 함께 세월을 보내며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하나하나 드러운 성질, 치욕적인 약점, 취향 따위를 드러내게 되는 게 당연하고
그걸 최대한 받아들여주거나, 수용은 못해도 최소한 이해하려고 노력해주는 관계가
친구라는 테두리를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내 휴대폰 친구 폴더에 저장된 이들은 모두가 내게 이상적인 친구의 가능성을 지닌 후보자라는 뜻이다.
나와 함께 하는 시간과 만남의 깊이에 따라
아직은 "후배"나 "동창", 또는 "미지정" 폴더에 들어 있는 이들도 언젠가는 "친구" 폴더에 올라올 수도 있을 것이고, 몇년 후 "친구" 폴더에서 "동창" 폴더로 내려갔다가 슬며시 전화번호부에서 삭제될 친구도 있을 것이다. 아니지.. 삭제될 만큼 마음 상하는 일이 있었다면, 전화를 따돌리기 위해서라도 번호를 삭제는 못하겠군 -_-;;
암튼 내게 친구의 범주란...
지난 40년의 세월을 속속들이 이미 알고 있는 친구도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 삶의 연이 닿질 않아 깊은 속내를 드러내놓고 상처를 같이 쓰다듬을 기회는 없었으되, 혹시 그럴만한 때가 되면 깊이 공유할 부분을 갖고 있는 사람들까지도 포함된다.
물론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자 턱도 없는 기대감일 수도 있으니, 몽상가스러운 나의 친구 개념을 누군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난 그렇게 믿으련다.
아메리카인디언의 속담이라던가.
친구는 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고
가슴이 찡했었다.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에서도 친구라면, 친구가 살인을 했더라도 분명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이해해주는 마음을 갖는 거라는(정확한 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맥락이었던 듯..) 얘기에도 돌연 눈물이 핑 돌았던 기억이 있다.
두 경우 모두 퍼뜩, 내 짐을 대신 짊어지고 갈 친구는 내게 몇명이나 되나..
극단적으로 내가 살인을 했을 때 내 편이 되어줄 친구는 몇명일까 손꼽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이내, 반대의 경우에도 내가 과연 그 친구들에게 선뜻 친구라고 나서줄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란 사람은 관계에 늘 집착하고 꿈과 환상을 품고
그래서 또 상처받고
다행히 위로도 받고 그러는 가운데 기쁨을 누리는 것 같다.
다분히 인간집착적인 성격이랄까...
하지만
삶의 방향이 달라져서, 이젠 부동산과 애들 교육에만 열을 올리는 흔한 아줌마가 되어버려,
아직도 문방구 학용품과 잘생긴 남자배우에 열을 올리는 나와는 대화의 공감대가 사라져
어느새 많이 멀어졌다 느끼게 되는 사이라 해도
모든 걸 다 떨치고 나서 오롯이 혼자만 남게 되는 본원적인 상태에선 다시 친구임을
깨닫게 되기에
가끔씩 배신감에 땅바닥에 나동그라지게 되더라도
내게 가장 소중한 재산은 여전히 사람이라고 믿는다.
친구들이여, 앞으로 계속 추한 꼴 보이더라도 제발이지 너그러이 봐주게나.
나 또한 그러도록 노력함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