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중순쯤 동네 도서관에서 문자가 왔다. 올초에도 몇달간 공사로 휴관을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또 휴관을 한다나. 그런데 이번엔 단순한 휴관 안내가 아니라, 10월 1일부터 12월 초까지 방음공사를 하는 휴관기간을 맞아, 대출 책 부수를 30권까지 늘려주겠다는 것이 문자의 요지였다. 앗... 2주만에 책을 안 돌려줘도 된다고?

 

올 9월달까지 읽은 책이 총 20권도 안되는 주제에, 두달만에 30권을 읽어볼 생각은 대체 왜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암튼 사고 싶은데 비싸서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는 건축과 한옥관련 책들을 위주로 열심히 책 목록을 만들었다. 괜히 강박적으로 소설책도 많이 끼워넣고...

 

벌써 부지런한 사람들이 책을 많이 빌려가 반납예정일이 12월까지로 되어있는 책들이 꽤 있었는데, 내가 보고팠던 책 중에 2권짜리  반납일이 딱 내가 책 빌리러 가려는 날이길래 예약을 해놓고는 일부러 늦은 오후까지 버텼다. 나처럼 소심쟁이면 기일 맞춰 반납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건 나의 착각. 그 책은 그날 들어오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지난주에 빌려온 책이 무려 26권. 배낭도 매고 에코백을 챙겨갔음에도 책이 다 안들어가서 매고 들고 한아름 안고서 3층을 내려와 주차장까지 가는 것도 일이었다.  어쨌거나 그 많은 책을 낑낑대고 운반해 집에 쌓아놓고는 괜히 흐뭇했다. 나는 확실히 독서가가 아니라 '장서가'를 지향하는 인간이 틀림없다. 내 책도 아닌데 왜 흐뭇?

 

그러고는 며칠 지나서 또 날아온 문자. 내가 예약한 책이 들어왔으니 29일까지 대출하러 오라는 거였다. 두 달 안에 26권을 다 읽을 자신도 없으면서, 왜 또 그 책은 읽어볼 욕심이 나는지 원. ㅠ.ㅠ 그간 부지런 떨어서 읽은 책 2권을 반납도 할 겸, 예약 책을 찾으러 일요일 오후에 또 구립 도서관으로 향했다. 마트 장바구니 같은데 책을 잔뜩 담아가지고 둘이 낑낑대며 도서관 앞 언덕길을 내려오는 엄마와 아이를 보았을 때 이미 짐작했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도서관은 주차장 입구부터 차가 엉켜 아수라장이었다. 30권 대출 욕심을 부린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거다! 직원이 나와서 들고 나는 차들을 한참 정리하고 난 뒤 주차할 데도 없어서 건물 뒤 쓰레기 하치장 옆에 대충 차를 박아놓고는 부리나케 들어갔더니, 주로 아이들 대동한 아빠, 엄마들이 죄다 한아름씩 책을 안고 끙끙대며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 편의를 봐주느라 현관 문을 붙잡아주다보니, 꼼짝없이 계속 문만 붙잡고 있어야 할 판! 에라 모르겠다 나도 손잡이를 놓아버렸다. 네 사람이나 문 잡아줬는데, 고맙다는 인사도 딱 한번밖에 못 들었다. 쳇...

 

열람실에 올라가 지난번에 못 찾은 책도 다시 한권 찾아들고 예약한 책을 받아 총총 도서관을 나오며 또 다시 주차장 아수라장 속에 후진과 전진을 반복하는데, 짜증보다는 신기하단 생각이 더 많이 들었다. 가을이 독서의 계절이기 때문일까? 의외로 이 동네 사람들 책 많이 읽네? 두권 돌려주고 세권 더 빌려 왔으니 나도 30권은 못 채웠어도 29권이나 빌렸다! 다 읽고 갖다줄 수 있을까? 몇권이나 그냥 돌려주게 될까?

 

몇년 전인가, 도서관에 신간도서 신청을 하면 남들 안본 깨끗하고 따끈한 새 책을 제일 먼저 볼 수 있다고 그 방법을 여기다도 자랑했던 것 같은데, 바로 그해였나 그 다음해엔 도서구입 예산을 다 썼다면서 신간도서 신청을 받지 않겠다는 공지를 본 게 떠오른다. 도서관에서도 예산이 없어 책 구입을 못할 정도니 출판계가 말라죽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고, 책으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으로서 더 기운이 빠졌다. 우리나라에서 일년에 3-40만권씩 쏟아져나오는 신간이 모두 다 읽어볼 만한 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운영주체가 국가든 지자체든 개인이든 이 나라의 모든 도서관에서 한권씩 신간을 구비해준다고 가정하면 최소한 출판사마다 초판은 다 팔 수 있을 거란 말을 들었다. 과거엔 보통 책의 초판을 2천부 찍었으니까.

 

그러나 요즘에 초판을 2천부 찍으면 각종 언론사와 홍보용으로 배본하는 500부 말고는 죄다 반품이라 물류비용만 많이 드니 아예 초판부수를 천부로 줄였다는 출판사도 많다고 한다. 그나마 좀 팔리는 책도 마케팅용으로 반값 할인하다보면 판매부수는 많아도 결국 계산해보면 적자일 때도 있고. 출판 종사자의 얘기를 듣다보면 하루 빨리 책에 기대어 밥벌이하는 인생을 청산하고 다른 길을 찾아야할 것 같은 위기감이 드는데, 또 막상 무슨 일을 새로이 하겠나 싶어 그냥 한숨만 푹푹 쉴 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면서...

 

암튼 그렇게 출판사 망해가는 이야기만 듣다가 도서관에서나마 후끈한 대출 열기를 목도하고 오늘은 괜한 희망에 젖었다는 얘기다. 그리고 또 이렇게 블로그에라도 광고하면 괜한 오기가 생겨서라도 빌린 책 독서에 더 열을 쏟지 않겠나. 나도 궁금하다. 저 책중에 몇권이나 다 읽을지. ^^; (사실 비싸서 살까말까 망설이던 책들은 좀 읽어보고 괜찮으면 와우북 페스티벌 할 때 가서 할인가에 장만할 욕심도 없지 않다. 과연 게으름과 장서욕 중에 어느쪽이 승리할 것인가;;)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