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양

여행담 2013. 8. 5. 03:07

같은 곳에 여행을 가도 뭘 좀 아는 현지인의 이야기를 귀담아 들으면 확실히 더 재미가 있는 건 당연.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거나 미리 공부를 해서 답사처럼 여행을 떠나는 게 유행인가보다. 나 역시 '답사'라는 이름으로 난생처음 청양엘 다녀왔다. 코스는 면암 최익현의 사당인 모덕사, 정산 서정리 9층석탑, 장승공원, 칠갑산 장곡사, 그리고 올라오다가 들른 아산 평촌리 약사여래불.

 

최익현은 조선말 흥선대원군의 퇴출을 이끌어낸 상소를 올린 인물이자 의병장. 국사책에서 들어본 이름이긴 해도 당연히 다 까먹었는데, 의병을 일으켜 항일운동을 하다가 잡혀 대마도로 끌려간 뒤 적의 음식을 거부해 굶어죽기를 자처했단다. 이후 곳곳에 추종자들이 사당을 지었다는데 청양 모덕사는 최익현이 의병을 일으키기 전 몇 해 지내던 고택과 장서각도 함께 있는 곳.

 

가랑비 속에 오래된 한옥을 둘러보니 더욱 운치가 있었다.

 

집 한쪽으로 난간 두른 누마루를 내어짓고 아래는 아궁이를 둔 독특한 구조를 보라. +_+ 상당히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느낌.. 아래 왼쪽은 4천권(이랬던 것 같음;;)이나 되는 옛 서책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는 장서각이다. 오래 묵은 종이와 묵향에다 최근 넣어둔 좀약냄새가 뒤섞여 아주 오묘한 냄새가 났다. ㅋㅋ

 

 

내부는 이런 모습;;

 

뒷마당의 장독대도 정겹고, 흙과 기와를 쌓아올린 여러가지 모양의 굴뚝도 예뻤다.

 

나는 뒤쳐져서 한옥 구경하느라 정작 사당은 관심없었다. 확실히 옛날에 지은 한옥과 현대에 얼렁뚱땅 지은 한옥은 척 봐도 차이가 있다. 한옥 짓는 기술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암튼 나도 언감생심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살 일이 있다면 어디서든 고택 부재를 몽땅 옮겨다가 지어야지 마음먹었다;; ㅎㅎ

 

 

 

 

 

 

 

 

 

 

 

 

 

 

 

다음 행선지는 정선 서정리 9층석탑. 드물게 고려시대 초기 석탑이라는데, 절터는 온데간데없고 길가에 뜬금없이 홀로 초라하게 서 있다.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있는 줄도 모를 듯...

 

 

 

이때만 해도 7월 초라 연꽃이 하나도 안보인다.

이날 논 옆의 연꽃밭(아마도 연근 수확을 위함인듯;;)을 보며 반색해서 사진 엄청 찍어왔는데.. ㅋㅋ 덕진공원 다녀와서 보니 그야말로 새발의 피.

 

금세 탑을 돌아보고나서 향한 곳은 예정에도 없던 천장호 출렁다리였다. 1박2일에도 나온 곳이라며 해설사와 청양군 관계자가 꼭 가보라 했다는데 ㅋㅋㅋㅋ 우리는 이런 인공조형물에 별로 관심 없는 사람이라규! 게다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흠흠... 저 빨간 고추모양 있는데 까지는 나무다리라서 나도 걸어가보았으나, 국내 최장(정말??)이라는 출렁다리엔 발도 올리지 않았다. 왜 괜히 사서 고생을 하겠나...  무섭다면서도 롤러코스터 타고 왁왁 소리지르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유형이다. 정말 무서우면 소리도 안나오는데... 흥. 사진 같이 구색 맞추느라 옆에 올린 건 밥집 옆에 있던 장승공원.

 

 

원래 옛날부터 전해지던 장승들은 어쩌고 새로 만든 장승들을(세계 각국에서 보내온 조형물 포함;;) 세워놓았는데 이런 데도 난 싫다. 그나마 산채정식이 맛있어서 다 용서되는 느낌.. ㅎㅎ (어르신들 틈에서 허겁지겁 밥먹느라 밥상 사진 찍는 건 까먹었다. ㅎㅎ 이름이 '맛집'이라고;;)

 

인위적인 느낌 풀풀나게 줄지어 세어놓은 장승들은 어딘가 처량맞아 보였지만, 그래도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에 유독 푸르러 보이는 신록과 산새에 눈이 다 시원해졌다.

 

 

 

점심 먹고 간 곳은 칠갑산 장곡사.

한낮인데도 비구름이 코앞까지 내려와 깊은 산중의 느낌이 났다. 나로선 이름도 처음 들어본 절인데, 꽤나 역사도 깊고(신라시대 때 처음 창건되었다고) 국보급 불상과 오래 된 보물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었다. 특이한 점은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나뉘어 대웅전이 둘이나 된다는 사실.

 

역시나 설명은 건성으로 듣고 여기저기 마음대로 기웃대느라 어쩌다 대웅전이 둘이나 생겼는지 그건 모르겠다. ㅋㅋ

암튼 상대웅전의 경우 고려시대에 처음 지었고 이후 조선 말기에 고쳐지어 주춧돌 같은 건 고려시대의 것이 그대로 남아있으면서 시대별 건축양식이 뒤섞여 있다는 것 같다. 자연석을 특별히 많이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덤벙주초'라고 하는데, 내가 찍어온 주춧돌이 바로 고려시대 것이 아닐까싶다. ^^;

 

 

 

 

 

 

 

 

 

 

 

 

 

 

일주문 대신 오른쪽 누각 사이로 난 계단을 올라가는 독특한 구조. 누각 위엔 코끼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오래 된 북과 스님들이 탁발한 밥을 담았다는 거대한 구유가 놓여 있다.  상대웅전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에서 내려다보는 절집 기와지붕도 (내 눈엔) 드물게 보는 절경이다.  

이것이 바로 밥통으로 썼다는 여물통 ^^ 코끼리 가죽 북이라니... 헐..

 

하대웅전 앞에서부터 어슬렁거리던 누런 고양이 한마리는 사람들을 꺼리지도 않더니 어느틈에 상대웅전 앞마당까지 따라왔다. 꼬리까지 높이 치켜들고 아무래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것 같아서 소원을 들어주었다. ;-p 

 

오른쪽 사진이 아마도 국보라는 비로자나불? 대웅전 안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소심한 나는 밖에서 한장 건졌는데 다른 분들  막 가운데 문으로 드나들고 사진찍다가 스님한테 다들 엄청 혼났다. 켁;; 사진에선 잘 안보이지만 대웅전 바닥엔 연꽃문양의 '전돌'이 깔려 있다. 전돌은 기와처럼 구워서 만든 일종의 타일로, 전통적인 바닥장식재다. (근정전 바닥에도 깔려있음!) 안쪽 부분 전돌은 고려시대의 것 그대로고 바깥부분만 모조품이라는 것 같다. 확실히 현대 들어 모방한 전돌과는 질적으로도 차이가 있어보였다. 돌 자체에서도 오랜 세월이 느껴지기도 했지만 연꽃 문양이 좀 더 오묘하고 섬세해!

 

혼날까봐 못찍어온 불상 사진은 다른 용감한 분의 작품으로 대체.. ㅋ

어린시절부터 외할머니와 엄마 따라서 절 구경을 참 많이도 다녀봤지만 이런 불상과 석조대좌는 처음 보는 듯... 신기했다.  광배라고 해서 나무판때기로 만들어 세운 후광무늬도 엄청 섬세하다.

 

옆에 있는 약사여래상도 같이 보물인가 국보랬으나 그건 사진 없음.

 

 

 

국보급 불상과 오래된 대웅전의 건축양식을 확인한 것도 좋았지만 나는 산속에 들어앉은 절 구경 자체가 좋았던 것 같다. 누구는 아무리 깊은 산속이라도 경치 좋은 곳은 죄다 절이 차지하고 있으니 그 또한 특혜이자 비리가 아니겠느냐고 하던데, 박해를 피해 어쩔 수 없이 절이 산속으로 숨어든 것이든 아니든 암튼 구경다니는 사람으로선 풍광 좋은 곳에 오래된 한옥들이 곳곳에 남아있어 참 좋다. 부디 자꾸만 넓혀짓고 높여짓고 으리으리하게 '현대화'하지나 말았으면...

 

 

아쉬운 마음으로 내려오다보니, 한쪽에 남은 기와로 얕은 담장 쌓아놓은 것도 탐이 났다. 빗속에 더욱 싱그럽게 보이는 초록잎들...

 

 

 

 

 

뭔가 불상을 하나 더 볼 계획이었는데 공사중이라는 소식에 청양을 떠나 올라오다 아산엘 들렀다. 이름하여 평촌리 약사여래불.

멀리서 볼 땐 사진처럼 저렇게 얼굴을 약간 찡그리고 있는 듯 하더니 가까이서 보니 인상이 달라져 평온한 얼굴이었다. 옆에서 보면 납작한 돌인데 저걸 어떻게 균형맞춰 세워놓았는지 그또 한 신기... 

아마도 땅밑으로 한참 더 파묻어놓았을 것이라지만 겉보기엔 파묻힌 것 같지 않고 고임돌도 시원찮다.

 

암튼 잘은 몰라도 섬세한 옷의 주름과 빼어난 생김새가 비례에 맞춰 아름답게 표현된 석불은 최소한 고려시대 이전의 보물이라고 들었다. 조선시대엔 아무래도 불교미술의 쇠퇴기니까...

이것도 고려시대 불상이라는 듯...

고려시대 석탑과 불상이 얼마나 남아있는지 모르겠으나 그쪽만 찾아보러 다녀도 흥미롭겠단 생각이 들었다.

 

 

 

당일 답사인데도 온종일 아주 알차게 여러군데 돌아다닌 하루여서 이렇게 뒤늦게라도 줄줄이 적고보니 2박3일은 되는 것 같다. ㅎㅎㅎ

 

2013년 7월 5일 청양 & 아산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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