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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9.06.13 영월 창령사 터 오백나한 전 6
  2. 2012.06.20 강수진 <까멜리아 레이디> 7

6월 2일까지 전시중이었던 근대서화전과 함께 오백나한전을 보러 중앙박물관에 가면 좋겠다고 5월 내내 별렀으나 결국 근대서화전은 놓쳤고, ㅠ.ㅠ 13일 끝으로 알고 있던 오백나한전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어 지난 월요일에 뛰쳐나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면서 더욱 선명하고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나무 색깔부터 감동.

매번 이촌 지하철역에서 나와 진입하거나 주차장에서 들어가 늘 건물을 보던 시선도 고정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지상 정문쪽에서 걸어들어가며 바라보이는 중앙박물관의 모습에 또 한번 반했다.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남산.. 좋다. ​

​배낭은 앞으로 매야하고, 먹물 조심해달라는 구구절절 주의사항을 듣고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흡! 전시 기획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박수쳐주고 싶더라. 대부분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지 않아서 더욱 기뻤고.

​브로셔에 든 스타 나한상부터 하나하나 정성껏 카메라에 담으며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휴...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느낌이 다 다를까.

아래는 김승영 작가의 설치미술 주변 유리 안에 들어 있던 나한상들이다. 표정의 느낌 별로 모아놓은 듯.

전시 보러 가서 늘 하던 놀이대로 나한상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뭘 가질까 여러번 둘러보며 고민했는데 도무지 하나만으론 딱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반면, 지그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릴 뻔한 나한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얼굴이었다.

절에서 여자 신도들에게 형식적으로 부르는 '보살님'이란 호칭에 정말로 어울리게 평생 사찰과 밀접하게 살아온 외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쟁쟁한 할머니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자비심 보살님인 울 엄마 영자씨도 생각나고. ㅠ.ㅠ

엄마는 젊었을 때 외할머니랑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는데 늙어가면서 점점 할머니랑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모나 외삼촌들이나 이웃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나도 엄마랑 나가면 하도 안 닮아서 며느리신가보다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나이 더 들면 닮은꼴이 될까? 째뜬 우스운 건 외할머니 키가 170, 울 엄만 160... 그리고 난.. ㅠ.ㅠ

딸이 자기 엄마보다 키 작기가 드물다는데 울 엄마도 나도 자기 엄마보다 키 작은 딸이란 거 하나는 확실한 공통점이다.



전시장을 두바퀴쯤 돌고 나서 구석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인상적인 몇몇 나한상을 다시 눈과 마음에 새기고 돌아나서려니 이번엔 얼굴이 다 닳아 거의 없어진 나한상이 눈에 콕 들어왔다. 

파피가 먼저 전시보러 갔을 때 사진 작품의 질이 ㅎㄷㄷ하다며 엄청 탐났으나 품절이라 못구했다는 대도록은 아예 구경도 할 수가 없었고, 아쉬우나마 저렴한 엽서 크기의 소도록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이번주 일요일 16일까지 연장전시한다고.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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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만에 발레를 보러 간 건지 모르겠다. 최소한 10년? +_+

볼만한 발레 공연은 워낙 비싸고, 비교적 저렴한 국내 발레단의 공연은 좀 실망스럽다는 편견 때문이다. 언젠가 연말에 보러간 <호두까기인형>에서 군무 때마다 발레리나를 들어올리는 발레리노가 '끙' 힘주는 느낌 뿐만 아니라 쿵쿵 대는 발소리까지 어찌나 안쓰럽던지 그간 발레 공연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요번 강수진 공연을 꼭 보고싶다는 친구가 나섰다. 그래, 나도 그 유명하다는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강수진의 공연은 한번 보고싶었다. 게다가 이 공연은 강수진에게 가장 어울린다는 '춘희' 역할의 <까멜리아 레이디>가 아닌가. 허나 공연을 며칠 앞둔 상황이라 가장 좋은 VIP석(25만원)은 표가 남아있지도 않았고, 어차피 뒤에서 볼 거라면 친구는 제일 부담없이 저렴한 B석(5만원)에서 보자고 했다. ㅠ.ㅠ 그래도 A석(10만원) 정도는 봐줘야 하지 않을까 싶었으나, 결과적으로 친구의 판단은 옳았던 것 같다. 남아있는 A석도 죄다 3층이었던 듯(신포도 이론).

 

3천원 주고 빌린 오페라글라스로 들여다보아도 강수진의 표정 연기를 제대로 볼 수 없는 3층 꼭대기 좌석이긴 했지만, 공연은 정말 감동적이었다. 나는 고전 발레와 드라마 발레의 구분도 잘 모르는 사람인데, 높은 도약과 신기에 가까운 회전을 중심으로 연기를 펼치는 것이 고전발레이고, 현란한 발레 기술보다는 표정과 연기가 더 중요한 것이 드라마 발레란다. 발레 기술과 동작이 우아함의 극치일 뿐만 아니라 표정이 풍부한 강수진은 단연코 드라마 발레에 최적화된 발레리나이고.

 

뒤마의 <춘희>가 원작이므로 나는 당연히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음악에 맞춰 발레 연기가 이어지려니 짐작했었다가 좀 놀랐다. 전혀 아니네! 1부 끝나고서야 헉헉대며 다시 계단을 내려가 사온 팸플릿을 보니 음악은 다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아니면 소나타란다.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음악과 줄거리와 강수진의 연기가 어찌나 잘 어우러지는지... 1, 2, 3부 공연이 죄다 언제 끝났나 싶었다. 3, 40만원씩 하는 클래식 공연에 비하면, 수준 높은 오케스트라 연주도 듣고 발레도 보는 이런 공연은 25만원을 내도 아깝지 않았겠다. 그러니까 그렇게 죄다 좋은 좌석이 매진이었겠지.

 

내가 예매할 때만 해도 2백석 가까이 남아있던 B석도 공연때 보니 거의 다 차 빈자리가 드물었다. 그렇게라도 다들 강수진의 공연을 보고싶었다는 뜻이다. 친구에게 들으니 강수진이 <까멜리아 레이디> 공연으로 한국을 찾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했단다. 무대가 너무 멀어서 계속 아쉬웠지만 나 역시 그 마지막 기회를 놓치지 않아 기뻤다. 더불어 30대 시절 강수진의 연기는 어땠을지 아쉽고 궁금했다. 언젠가 TV 중계로 강수진의 다른 작품을 보며 감탄한 적 있는데, 발레도 역시 현장에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는 예술이었다. 로열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공연을 본 뒤로 눈을 버려(?)서 웬만한 수준의 발레 공연은 눈에도 차지 않는다는 친구도 다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왜 세계 정상의 발레단이라고 하는지 알겠다고 했다. 주조연 가릴 것 없이 다들 깃털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대단한 춤과 연기를 보여주었다.

 

마르그리트 역의 강수진도 한숨나게 매혹적이었지만 아르망 역할의 마데인 라데마케르도 최고였다.

두 사람의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이 그야말로 고스란히 전달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무대. 발레 동작의 마임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도, 손끝 하나 발걸음 하나에 담긴 사랑과 절망 같은 감정을 다 알겠더라. ㅠ.ㅠ

 

우스개 소리로 친구와 한탄했다. 같은 사람인데 저들은 몸을 저리도 우아하고 아름답게 쓰건만, 우리 몸뚱아리는 왜 이 모냥이냐고... 발레는 너무 인체를 가혹하게 학대하며 이루어낸 예술이라 마음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할 때가 가끔있지만, 막상 그런 시련을 딛고 정상에 오른 무용수들의 춤과 몸을 보면 참으로 아름답고 황홀하다.

 

그래서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팸플릿에서 특히 마음에 들었던 강수진의 프로필 사진도 퍼왔음. ㅎㅎ 

 

아 참, 좌석이 아무리 나빴어도 이번 공연은 정말 보기를 잘했다고 거듭 인정하지만 다시는 세종문화회관 3층 좌석에서 무슨 공연이든 보지 않을 작정이다. 2층엔 가봤어도 3층은 처음이었는데, 무대와의 거리를 좁히려면 어쩔 수 없는 공연장 설계임을 알지만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로선 앞으로 쏟아질까봐 겁나서 쉬는시간마다 계단을 드나들며 덜덜 떨었다. 좌석 간격도 어찌나 좁은지 사람이 앉아 있으면 지나갈 수조차 없다. ㅎㄷㄷ 예전에 런던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비슷하게 경사 급한 꼭대기 좌석에서 본 뒤 한동안 공연 보다 자리에서 앞으로 굴러떨어지는 꿈을 꿨었다. 이번에도 보나마나 또 객석에서 굴러 떨어지는 꿈을 꾸겠군, 생각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하는 건지 아직까지 안 꿨다. ㅎ 객석의 열악함보다는 멋진 공연의 인상이 워낙 깊고 훌륭했기 때문이려니 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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