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탓도 있었고 게으름 탓도 있어서 전시 구경이 너무나도 뜸했던 2021년에 대한 보상심리인지... 굶주린 사람처럼 3주째 전시장을 휘저었음. 대규모 박수근 전시를 보았던 기억이 있어 언제인가 블로그를 뒤져보니 2014년 탄생 100주년 기념전을 가나아트센터로 보러 갔었다고 적혀 있다. 그새 8년이 흘렀다니... 그때 전시가 더 인상 깊었던 것도 같은데, 박수근 그림에 대한 애정은 어쩐지 모든 한국인에게 '국룰'이 된 것 같아서 요번 전시도 여전히 좋았다. 이건희 컬렉션이 포함되었다는 것 같았으나 주로 소품 위주라 딱히 새로이 보이는 작품이 많은 듯한 느낌은 아니고, 다른 개인소장품도 많아서 암튼 대작들은 다 볼 수 있다. 

게다가 당시 어둡고 암울한 시대상을 반영한 것인지 깜깜한 전시장에 은은하게 작품만 도드라지게 조명을 받는 분위기가 고즈녁하고 참 좋았다. 맘에 드는 그림 앞에서 한참동안 멍하니 서서 감상하는 묘미가 더욱 깊어지는 느낌이랄까.  

브로셔 표제작품 [나무와 두 여인]

작품 사진도 휴대폰에 실컷 담아왔지만....그날의 어둠컴컴한 전시실 분위기를 주로 담은 사진으로만 골라 올린다.  미술관 구경다니더라도 제발이지 이젠 엽서라든지 포스터 따위 사모으지 말아야지 결심했지만, ㅠ.ㅠ 결국 마스킹 테이프랑 맨 마지막 사진 속 작품인 [나무와 두 여인] 포스터 그림은 사오고야 말았다(아기 업은 소녀 그림과 둘 중에서 끝가지 고민함. ㅎㅎ 그리고 액자에 표구된 그림은 무려 35만원에 판매되고 있는데, 사람들이 거침없이 사들고 가는 걸 목격하고 부러웠음.) 더 이상 그림 걸 벽도 안 남은 주제에!! 째뜬 일단 고이 잘 모셔두었다. 포스터를 살 때엔 2013년에 사다붙인 브레송 사진 포스터를 이참에 부악~ 떼어버리고 대신 박수근 그림을 걸 작정이었는데... 와서 보니 또 찢어버리기가 아깝네그려. ㅋㅋ 

째뜬 허영심 가득한 문화생활은 여기에 모아두지 않으면 제대로 기록해둘 방법이 없으니 원 코로나 시국에 돌아다닌 게 민망해도 꾸역꾸역 적어둔다. 전시는 2022년 3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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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마감에 힘써야하는 기간이지만, 작년에 너무 전시구경에 소홀했던 관계로 마구잡이로 약속을 잡아 1주일에 한번씩 전시구경을 다녔다. 벼르고 별렀던 조선의 승려장인 특별 전시는 반가사유상을 나란히 전시해놓았다는 본관 상설전시 사유의 방 구경과 한꺼번에 볼 계획이었는데... ㅠ.ㅠ 결과적으로 특별전시 하나만 보고 말았다. BTS RM이 국박 사유의 방 전시를 보고 SNS에 올렸다니 당분간 아미들이 러시가 이어지겠지.... 그 전에 다녀왔어야 했는데 아쉽다. 암튼 2022년 1월 21일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로 구경다녀온 이 전시 입장료는 5천원이고 3월 6일까지 계속됨.

보관의 저 정교한 디테일을 보라! 어휴...
일본에 반출됐다가 돌아와서 어깨에 붉은 글씨로 일본이라 써 있는 불상
석탑 안에 들어 있던 미니어처 불상들.. 귀엽다고 하면 안되나? ㅎ
현대작가와 콜라보도 어울리는 금빛 불상들

벌써 그날의 감동이 사라져가고 있다. 탱화 그리는 스님의 붓놀림이 놀라웠던 동영상도 인상적이고 볼 거리가 너무 많아서 약간 소화불량 느낌이었다. 이제는 전시 하나를 봐도 머릿속에 정리가 잘 안되는 기분. 그래도 암튼 보고팠던 전시 보며 허영심을 달래서 행복했다. 밖에 나가 점심 먹고 나서서는 다시 석탑들 줄지어 서 있는 마당 지나 용산 가족공원도 한 바퀴 돌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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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 전시 관람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서 열린 러시아 이콘 전시회였다. 지인 한 분이 이곳에서 해설 봉사를 하시는데 수년째 오란 말씀 안하시더니 요번엔 정말 꼭 볼만하다며 와보라고 홍보를 하셨다. 호객행위처럼 직접 찍은 동영상 하나를 틱 보내주셨는데 오오옷.. 단번에 가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콘'이라는 말도 처음 들었는데, 짐작할 수 있듯이 '아이콘'과 같은 말일 테고, 고대 그리스어 에이콘(eikon)에서 유래했다고. 특히 '이콘'이라고 하면 동방정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그리스도 신앙을 담은 성화를 의미하는 듯.
위로의 방이라고 해야하나 콘솔레이션 홀이라고 적힌 별도의 공간에서 3차원 디지털영상을 틀어주고 있던데, 그것만 보아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 나 같은 무종교인은 똑같은 기독교라도 천주교 공간은 개신교 공간보다 마음이 덜 불편하다. 그 또한 일종의 편견이겠지만 암튼. 이콘 전시를 보면 종교인이 아니더라도 'holy'한 마음이 든다는 후문을 종종 들었는데 그 말이 맞았다. 예수나 성모의 존재자체보다는 그 초월적 존재를 성스럽게 떠받들고 소망하는 인간들의 경건한 모습과 노력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게다가 알고보니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건축 자체도 예술! 게다가 이콘전시뿐만 아니라 상설전시, 기획전시도 볼 거리가 많았다. 한파가 몰려왔던 1월 12일 오전, 1시간정도 둘러보면 되겠거니 얕잡아봤다가 결국 다 못보고 나중에 다시 오자며 주린 배를 달래러 나와야했다.

지하1층 전시장 입구
손으로 만들지 않은 구세주..라나 제목이 이해되지 않아서 해설하시는 분에게 설명을 들었지만 역시나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ㅋㅋ 번역 오류라고 생각했음. 손으로 그리지 않은 예수.. 정도였다면 어땠을까.

이콘 성화들을 돌아보며, 예수는 물론이고 동방박사들도 아시아 유색인이란 건 확실한가보다고 속삭였다. ^^;

러시아정교 제대는 5단으로 꾸민다던가. 정확한 명칭은 기억나지 않고 암튼 계단식 성당 공간과 이콘 장식을 재현해놓았는데 아마도 천주교인이었다면 저절로 무릎 꿇고 기도하고 싶었을 것 같다. 그저 앉아있기만 해도 좋은 공간.

상설전시실. 내부 구조도 고딕성당 나무 형상 골조를 닮았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떠올랐던 안뜰 예술품

곳곳에 놓인 예술품이 엄청나다. 디지털 화면으로 얼굴이 표현된 피에타도 멋졌는데 사진은 여기 안올리겠음. ㅎㅎ (티스토리 사진 편집 방식이 바뀌어서 엄청 불편하닷!) 이콘 전시실 나와서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폭포와 파도와 모세의 기적까지 디지털 영상으로 구현되던 옥외 설치미술도 좋았고, 나중에 천주교 성지 관련 답사를 한번 더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는 무료이고, 2022년 2월 27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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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보고 싶어 탐내던 전시였는데 9월을 허송세월한 관계로 놓치는 줄 알았다가, 중앙박물관에서 10월 20일까지 연장전시를 해준 덕분에 간신히 보고 왔다. 진경산수화도 좋고 실경산수화도 좋고... 색채 화려한 인상파 그림이나 샤갈, 마티스 등등도 다 좋지만 우리 옛그림도 진짜 볼수록 아름다워 빠져든다. 어떻게 화선지나 비단에 붓으로 그렇게 섬세한 묘사가 가능한지 원!

문제는 이 전시 보기로 하고 전날밤에 하필 무지막지한 과음을 새벽까지 했던 관계로... 술이 덜 깨고 속이 메슥거려서 ㅠ.ㅠ 속속들이 찬찬히 다 보지 못하고 중간중간 탈진해 의자에서 쉬어야 했다는 점. 

최악의 컨디션이었음에도 눈을 뗄 수 없는 그림들이 너무 많았다. 

금강산과 총석정을 그린 그림을 볼 때마다 에고 빨랑 금강산관광 재개되어서 나도 좀 가보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옛날에 남북교류 한참 가능할 때는 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하나도 안들었을까. 금강산관광은 그냥 울 아버지 같은 노친네들이나 안보관광으로 가는 건줄 알았다는;; 

암튼... 그 옛날에도 새하얀 도포자락 휘날리며 풍경 좋은 산에 꾸역꾸역 힘들게 올라가 경치 보고 좋아라하고 그림으로 남기고 그러던 풍습은 요즘이랑 별로 다를 것도 없지 싶다.큼지막한 풍경화 속에 숨어 있는 작은 사람들 찾기 놀이도 매번 즐겁다. 

양반네들의 평생 소원인 금강산 안내를 도맡느라 수시로 동원되었다는 주변 사찰 스님/중들은 뒷모습에서도 귀찮음과 피곤함이 느껴졌던 건 순전히 내 감정이입 때문이었겠지. 

하여간... 핸드폰을 꺼내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휘청휘청 보고 다녀서 그림 사진은 하나도 안찍고 돌아 나오다가 포스터만 달랑 찍어왔다. 순전히 기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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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일까지 전시중이었던 근대서화전과 함께 오백나한전을 보러 중앙박물관에 가면 좋겠다고 5월 내내 별렀으나 결국 근대서화전은 놓쳤고, ㅠ.ㅠ 13일 끝으로 알고 있던 오백나한전이라도 꼭 봐야겠다 싶어 지난 월요일에 뛰쳐나갔다. 흐렸던 하늘이 점점 개면서 더욱 선명하고 초록초록하게 보이는 나무 색깔부터 감동.

매번 이촌 지하철역에서 나와 진입하거나 주차장에서 들어가 늘 건물을 보던 시선도 고정되어 있었는데 우연히 전시장에서 만난 지인들과 점심을 먹고 다시 들어가는 바람에 지상 정문쪽에서 걸어들어가며 바라보이는 중앙박물관의 모습에 또 한번 반했다. 트인 공간으로 보이는 남산.. 좋다. ​

​배낭은 앞으로 매야하고, 먹물 조심해달라는 구구절절 주의사항을 듣고 전시장에 들어간 순간 흡! 전시 기획을 누가했는지 모르지만 박수쳐주고 싶더라. 대부분 유리상자 안에 가둬놓지 않아서 더욱 기뻤고.

​브로셔에 든 스타 나한상부터 하나하나 정성껏 카메라에 담으며 마음이 경건해지는 것 같았다. 어휴... 어떻게 이렇게 하나하나 느낌이 다 다를까.

아래는 김승영 작가의 설치미술 주변 유리 안에 들어 있던 나한상들이다. 표정의 느낌 별로 모아놓은 듯.

전시 보러 가서 늘 하던 놀이대로 나한상을 하나만 가질 수 있다면 뭘 가질까 여러번 둘러보며 고민했는데 도무지 하나만으론 딱히 마음을 정할 수 없었던 반면, 지그시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을 흘릴 뻔한 나한상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얼굴이었다.

절에서 여자 신도들에게 형식적으로 부르는 '보살님'이란 호칭에 정말로 어울리게 평생 사찰과 밀접하게 살아온 외할머니가 떠오르면서 쟁쟁한 할머니 목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덩달아 자비심 보살님인 울 엄마 영자씨도 생각나고. ㅠ.ㅠ

엄마는 젊었을 때 외할머니랑 하나도 닮은 구석이 없었는데 늙어가면서 점점 할머니랑 똑같은 얼굴이 되었다. 이모나 외삼촌들이나 이웃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나도 엄마랑 나가면 하도 안 닮아서 며느리신가보다고 하는 소리를 종종 듣는데, 나이 더 들면 닮은꼴이 될까? 째뜬 우스운 건 외할머니 키가 170, 울 엄만 160... 그리고 난.. ㅠ.ㅠ

딸이 자기 엄마보다 키 작기가 드물다는데 울 엄마도 나도 자기 엄마보다 키 작은 딸이란 거 하나는 확실한 공통점이다.



전시장을 두바퀴쯤 돌고 나서 구석 의자에 한참 앉아 있다가 다시 인상적인 몇몇 나한상을 다시 눈과 마음에 새기고 돌아나서려니 이번엔 얼굴이 다 닳아 거의 없어진 나한상이 눈에 콕 들어왔다. 

파피가 먼저 전시보러 갔을 때 사진 작품의 질이 ㅎㄷㄷ하다며 엄청 탐났으나 품절이라 못구했다는 대도록은 아예 구경도 할 수가 없었고, 아쉬우나마 저렴한 엽서 크기의 소도록을 집어들고 돌아왔다. 


이번주 일요일 16일까지 연장전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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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가구박물관

놀잇감 2019. 6. 9. 16:48

그렇게 좋더란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 벼르고 별렀으나 이제야 드디어 가본 성북동 한국가구박물관. 4월초쯤에 예매 사이트엘 들어갔는데도 5월 말밖에 자리가 없었다.

개인박물관치고 가장 입장료가 비싸다는 해설사의 말마따나 무려 1人 2만원. 근데 둘러보고 나오며 아깝단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개인이 이 정도 한옥집과 고가구를 모으고 유지하기가 쉽진 않겠지. 오히려 꽤 규모가 크고 직원도 많던데 관람료와 대관료로 계속 박물관 유지가 가능할까 셈에 느린 나로선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예전엔 뜨르르하는 부자였을지 몰라도, 혹은 후대에 들어 재산관리를 잘못했는지 어쩐지 가구박물관과 부지가 경매에 나왔다는 얘기를 종종 들었으나 아직 완전 부도나서 넘어가진 않은 모양이다. 이러다 나 구경가기 전에 경매로 넘어가는 거 아닌가 조바심이 나기도 했었는데, 관람객은 계속 꽤 많은 듯.  

비내린 뒤 개인 하늘이 정말 푸르렀던 날이었다. 대문이 열리고 마당으로 들어서자마자 감탄하며 나도 모르게 사진을 찍었는데 10초쯤 뒤 건물 외부 포함 모든 사진촬영은 지정된 곳 이외엔 절대 금지라고 하더군. 으으 뻘쭘하여라. 그래도 눈치 못했는지 사진 당장 지우란 말은 하지 않았다. ㅠ.ㅠ 이렇게 공개된 곳에 올렸으니 삭제하라고 연락오면 그때 삭제해야지. 

​박물관 관장이 거의 고등학생 때부터 고가구 보는 눈이 있어 버려진 고가구들을 모으기 시작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를 해설사가 하던데, 그런 안목을 갖춘 건 역시 집안에서 익히 골동품을 보고 자란 경험이 쌓여서 작용했을까? 우리 친가, 외가에도 옛날에 쓰고 있던 호족반, 개족반, 서안, 엄마가 시집올 때 해왔던 자개장... 이런 것들도 죄다 내버리지 않고 그냥 두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하기야 쓰기 멀쩡한 상태였는데 불편해서 버렸을 리는 없고 깨지고 망가지고 그랬으니 버렸을 거다. 엄마의 혼수품이었던 자개장은 나도 어렴풋이 기억하는데;; 엄청 무거워서 셋방살이 잦은 이사에 옮기기도 힘 들었지만 균형이 틀어져 이불장쪽 미닫이문이 잘 안닫히던 때가 있었다. 물론 전시품 자개장처럼 엄청나게 화려하게 전면에 꼼꼼히 자개를 입힌 골동품도 아니었고 듬성듬성 도안을 넣은 자개가 군데군데 떨어져나갔던 것 같다. ^^; 

전통 고가구야 다 아름답지만 누가 하나쯤 가지라고 한다면 앉은뱅이 책상인 서안을 가장 탐내는 편인데, 평평한 건 사대부들이 쓰던 거고, 끝이 위로 말려 올라간 건 사찰에서 쓰던 '경상'이란다. 두루마리 경전이 되말리지 않도록 펼처놓기 좋게 만든 거라고. 오호 그런 거였군. 우리 할아버지가 옛날에 쓰시던 저렴이 서안도 위로 말려 올라간 형태였던 것 같다. 나중엔 사대부들도 아름답고 좋아보여 널리 썼다니 한국전쟁 이후에 유통되던 가구들도 비슷하게 만들어진듯. 

암튼 근데 전시품 중 요번에 가장 탐났던 건 뭐니뭐니해도 책함! 사진찍고 싶은데 못찍어오니 인터넷 이미지를 뒤졌다. 역시... 중앙지 기자에겐 사진을 찍게 해주는군. 

책의 권수에 맞게 맞춤형으로 만들어 함째로 들고 이동해 읽었단다. 아.. 갖고 싶어라.. 사진 출처는 ㅈㅅ일보 +_+

1시간동안 다섯채 정도 되는 한옥과 그 안에 전시된 고가구를 둘러보고 나와서 드디어 사진 촬영이 가능한... 순정효왕후가 살았다는 한옥집 앞마당에 이르렀다. 사람들 없이 찍는데 성공. 

민망하지만 누마루쪽도 담긴 온전한 사진은 이것뿐이라 얼굴을 가렸다. ㅎㅎ 나중에 한옥을 짓고 살게 되면 나도 저렇게 창호지 분합문과 여닫이 유리문으로 이중문을 해달아야지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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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의 제국 몽골

놀잇감 2018. 6. 26. 17:31

달력을 찾아보니 중앙박물관 <칸의 제국 몽골> 전시회를 다녀왔던게 벌써 한달도 더 지난 5월 21일이다. 기억 휘발되기 전에 후기 남기려고 바로 며칠 뒤에 사진만 대충 골라 올려두고는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5월말엔 그러고 보니 나름 친구들이랑 많이도 놀러다녔네그려. 

몽골은 언제고 꼭 가보고싶은 여행지이기도 해서, 몽골 관련 전시라기에 기대가 컸다. 중박에서 특별전시하는 공간인 본관 건너편 전시실이 아니라, 본관 내부에 따로 기획전시실이 마련되어 있더라. 만나는 장소를 당연히 매표소 앞이라고 했다가 예상한 곳에 매표소가 없어 다들 좀 당황했으나 우리에겐 휴대폰이 있으니 헤맬 일은 없었다.

벌써 한달도 더 지나버려서 사진을 보아도 그때 느꼈던 세세한 감동이나 신기함은 잊히고 말았다. ㅠ.ㅠ 암튼 이번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고도 거슬렸던 건 해설하는 분이 자꾸만 '저희 나라'라고 설명했던 거다. 몽골을 우리나라보다 높일 생각이 있었던 건 분명 아니겠고 관람객을 너무 존대하려다 보니 초심자의 실수겠거니 짐작하면서도 너무 귀에 거슬려서 나중엔 설명듣다 뒤로 빠지기도 했다. 중앙박물관의 도슨트도 다들 자원봉사로 알고 있다. 기본 소양은 다들 검증되었을텐데 왜 기초적인 말실수로 점수를 깎이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그날의 짜증스러운 마음 같아선 중앙박물관 게시판에 전시 날짜와 시간대를 올려 담당자의 잘못을 '시정'시켜야 하는 것이 아닌가도 고민했으나, 결국 게을러서.. 그리고 또 뭔가 짠하기도 해서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ㅋ

하여간에 전시는 볼만했다. 관람료가 6천원이라보니 ^^; 특별기획전시 치고 비싸지 않아.. 뭐 이런 느낌이었고 그래서 가성비가 좋았다고 느꼈던 것도 같다. 몽골은 국보급 문화재를 전시하는 대규모 박물관이 마땅히 있질 않아서 몽골에 막상 가도 이런 정도의 문화재를 한꺼번에 보긴 힘들다고 하는 것 같다. 암튼.. 몽골의 선사시대부터 칭기즈칸 시대까지 생활상과 역사를 훑어볼 수 있고, 신기하고 멋진 유물과 기록들이 꽤 많았다.

​아래는 실제로 사용했던 걸까, 의례용일까 아니면 장식품일까 궁금했으나 결국 묻지 못했던, 주요 유물 안장이다. 사진 잘 찍었다고 스스로 흡족했음. ㅎㅎ

황후의 옷 치고 덜 화려하다고 느낌 ^^;

아마도 황후의 신발;;'마두금'이란 전통 악기

정교한 공예품으로 소개된 물건들이었던 것 같은데 굳이 왜 찍어왔는지, 내가 왜 올렸는지 기억 안난다. ㅠ.ㅠ 경복궁 꽃담이나 아미산 굴뚝처럼 몽골에서도 도자기로 정교하게 구운 장식물들을 만들었단 게 신기했나? 에효... 

암튼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의 대나무 뼈대를 벽처럼 세워 공간을 나누고, 마차와 식기 같은 생활 유물도 볼 수 있게 해놨다. 칸, 카안, 카간..의 차이를 듣기도 했는데...

​에잇.. 궁금하면 직접 가보시길. 7월 17일까지 계속 전시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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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을 보듬다

놀잇감 2016. 2. 17. 17:43

​또 고궁박물관 전시다. ^^; 게다가 2월 14일까지로 이미 끝나버려서 후기 올리기도 좀 민망하지만.... 감상하던 당시의 놀라움과 기쁨을 생각하면 그냥 넘어가지 말아야지 했다. 


<궁 프로젝트 - 창덕궁을 보듬다>는 문화재청과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매년 진행하고 있는 기획전시인 모양이다. 나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라는 대학이 있는 줄도 몰랐는데 우왕... +_+ 

'전통미술공예학과'의 4학년 학생들 작품이라는데 완전 깜놀했다. 어쩜 그리도 솜씨가 뛰어나고 작품들이 정교한지... 과거 도화서 화원들의 환생이구나 싶었다. 상상력과 아이디어도 뛰어나고, 완성도도 높고...

벌써 세번째라서 내년엔 '경복궁'을 주제로 삼는다는데 기대가 크다. 

창경궁을 주제로 삼은 이번 전시엔, 일제강점기에 '창경원'으로 놀이터가 되어버린 창경궁의 비운을 상징적으로 담아낸 작품부터, 동궐도 창경궁 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 타버린 철종 어진을 모사 복원해 놓은 작품까지 볼거리가 쏠쏠했다.

문화재 복원 일을 하고 싶어한다는 고등학생 딸을 둔 지인과 함께 봤는데, 이 학교 들어가기가 엄청 힘들단다. 왜 안 그렇겠나! 미술적 재능에 역사적인 지식과 관심까지 두루두루 갖춰야 할 수 있는 일이 문화재 복원이 아닐까나. 째뜬 작품을 둘러보며 내가 막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문화재 복원사업 한답시고 기성세대들은 종종 목재 팔아먹고 뇌물 받으며 턱턱 비리에 연루되지 않으면 생색내기용 졸속 복원으로 욕을 바가지로 먹고 있지만, 몹시 열악한 지원상황에도 파릇파릇한 젊은 세대가 꿈을 키우며 버텨주고 있구나 싶은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친절하게 작품제목까지 다 찍어왔어야 했는데... ㅠ.ㅠ (사진은 클릭하면 적당히^^ 커짐)

맨 왼쪽 작품은 창경궁 뜰에서 비명을 달리한 사도세자의 뒤주를, 가운데는 박쥐문양을 비롯한 벽사의 상징을 담은 단청을, 맨 오른쪽은 놀이동산으로 변한 창경궁의 모습을 유리정원과 동물 모습까지 겹겹의 동심원 안에 빼곡하게 담아냈다. 아이디어도 좋지...  


왼쪽은 내가 아래 어진 전시에서도 언급했던 철종의 군복 어진을 실물크기로 모사해 타버렸던 왼쪽을 완전 복원한 그림이다. 딱 내가 보고싶었던 완성작! 전시장 디지털 화면엔 학생들이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들을 찍은 사진들이 돌아가고 있었는데 서양화처럼 이젤을 세워두고 그리는 게 아니라 정말 옛날 방식대로 바닥에 큰 화폭을 깔아두고 그 위에서 엎드리다시피 쭈그려 작품활동을 하는 어린 예술가들의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오른쪽 그림은 창경궁 유리식물원. 곳곳에 사진기를 든 사람들이 있는데 숨은 그림찾기 하듯 한 사람씩 찾아내는 재미가 있었다. ^^; 초록색이 너무 예쁘다! 


마지막으로 찍어온 그림은... <동궐도>의 부분부분에 사람들을 그려넣어 기록화처럼 만든 작품 시리즈. 윗줄 맨 오른쪽 그림을 보면 무슨 잔치 준비중에 궁녀 한 사람이 바닥에 엎드려 혼이 나고 있는 것 같다. 무슨 사연인지 정녕 궁금...  아랫줄 맨 오른쪽엔 정조가 혜경궁홍씨 회갑연을 화성에서 마치고 돌아와 궁궐 문앞에서 백성에게 쌀을 나눠주게 했던 장면을 표현한 거라는 듯. 이런 작품을 그리면서 예술가는 특히나 뿌듯하고 막 행복해했을 것 같다. 부러워라... (물론 섬세한 선그리기 반복작업 때문에 괴롭고 좌절하는 순간들도 많았겠지만!) 

​앞으로도 이어질 궁 프로젝트도 열렬히 응원하겠고, 이 학생들에게 부디 빛나는 미래가 펼쳐지길 빌겠다. 그림쟁이의 어려움이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쭉~ 이어질 숙명인듯 해서 특히 짠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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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전시 후기뿐만 아니라, 영화도, 책도 후기를 착실하게 써볼까 하는 생각을 품고 있기 때문에 사소하게 스치며 본 거라도 얼른얼른 적어놓으려 한다. 까먹기 전에... 



올해의 첫 전시 관람은 거창하게 어디론가 미술관을 찾아간 게 아니라, 2주에 한번 가는 궁궐 옆 고궁박물관에서 전시하고 있는 <조선 왕실의 어진과 진전>.


'어진'은 왕의 초상을, '진전'은 어진을 봉안해둔 건물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에서 '어진'은 곧 국왕과 동일시되는 그림이라 진전에 봉안될 때는 따로 가마에 싣고 어가 행렬처럼 거창하게 운반했단다. 진전은 각 궁궐에도 있었고, 지방에도 있었으므로 (전주의 <경기전>처럼) 어진이 왕마다 여러 개나 존재했다는 얘긴데... 


조선 왕실에선 5백여년간 난리통에도 죄다 어진을 싸짊어지고 다니면서(가마로 옮길 형편이 안되는 응급상황엔 요즘 미대생들처럼 길쭉한 원통에 족자를 말아 넣고 가죽주머니에 넣어 짊어졌단다. 그 운반도구 실물도 전시되어 있음), 대대로 역대 왕들의 초상을 다시 베껴그리고 새로 장만해 왕조의 위엄과 정통성을 지키려했으나... 그 눈물겨운 노력의 소산은 1950년대 부산 피난시절 한국전쟁을 무사히 다 겪고 난 다음에 또 하필 창고에 불이나 죄다 타버리고 몇 점 안남아 있단다. +_+ 


해서 보물급 어진이 남아있는 왕은 태조, 영조, 철종(그나마 다 불타고 남은 절반만), 고종, 순종 정도다. 나머지 왕들의 초상화는 그러니까 다 현대 들어 화가들이 상상으로 그린 그림들.


조선의 초상화 기법은 사마귀 하나, 검버섯 하나도 사실적으로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이었다니, 역대 왕들의 어진이 죄다 남아있다면 부전자전으로 얼마나 닮았는지, 정말 볼만했을 텐데 참으로 안타깝다. 그런 의미에서 기골이 장대한 태조 이성계와 왜소한 체격이 느껴지는 영조 어진의 차이는 퍽 재미나다. 경기전에서도 (복제품으로) 봤지만 붉은 용포가 아니라 푸른 용포를 입은 태조의 어진은 참신하기까지. 용포가 아니라 드물게 군복을 입은 철종 어진도 신기한데, 난 철종 어진을 볼 때마다 그가 사시인가 아닌가(실제로 사시였다고 들은 것도 같고...) 궁금해 죽겠다. 

 

어진은 남은 게 없으니 전시엔 주로 어진을 옮긴 기록을 담은 의궤라든지, 진전의 현판, 진전에서 쓰던 제기, 그밖에 문신들의 초상화 등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하여, 엄청나게 볼 거리가 많다고는 절대 할 수 없는 작은 기획전시.


하지만 절반 가까이 타버린 '철종 어진'을 비롯해 보물급 어진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노린다면 쏠쏠하다고도 하겠다. 째뜬 난 보고 싶었음. 연령대별로 어진을 여러번 그렸다는(대체로 10년만에 한번씩 개비한다던가...) 영조의 외모가 어떻게 변해갔을지 상상도 해보고 말이지.. 아주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지 않나? ^^; 물론 로얄패밀리다운 위엄도 느껴지지만...


관람료는 무료이고 2월 14일까지 전시한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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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용산이전 10주년 기념으로 고대불교조각대전이라는 기획전시가 열리고 있다. 이름하여, <불상, 간다라에서 서라벌까지>. 

전시는 11월 15일까지고 유료전시라서 입장료 6000원. 신한카드로 결제하면 10% 할인해준다.

다른 불상은 잘 모르겠고, 저 유명한 신라시대의 반가사유상으로 국보78호와 83호 2개가 있는데, 그 둘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는 것만으로도(주로 중박에서 교체상설전시를 하다가, 아주 가끔씩만 나란히 전시를 하기 때문)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따로따로 보면 비슷한 크기라는데도 도무지 감이 안 잡혀서 원... 

그밖에도 불상 조성이 시작된 초기 인도와 중국, 일본, 삼국시대불상까지 역사적으로, 그리고 나라별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지만 암만 들여다봐도 한눈에 척 보고 분류해내진 못하겠더라 ^^;) 

1시간이면 대충 둘러보겠지 생각했는데 의외로 전시품이 많고 꼼꼼이 비교하며 들여다보자니 1시간반이 훌쩍... 약속시간이 다가와서 마음이 막 급해졌다. 

사진촬영은 다 금지됐다가 반가사유상 전시실에서만 가능하다. 나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도 욕심 부리며 열심히 찍어보았지만... 휴대폰 카메라로 둘을 한꺼번에 담는다는 건 무모한 짓이었다. 그래도 생생한 느낌을 간직하는 의미에서 찍어오긴 했다만 화질이 영...​

​왼쪽이 78호 반가사유상, 오른쪽이 83호 반가사유상이다. 

좀 더 가까이에서 담아온 사진을 나란히 붙여보면... 이렇다. 

국보 78호 반가사유상, 6세기국보 83호 반가사유상, 7세기

국보 78호 반가사유상은 6세기 후반에, 좀 더 단순미를 보여주는 83호 반가사유상은 7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내가 사진을 똑같은 거리에서 못 찍어서 78호가 더 크게 나왔지만 나란히 찍은 맨 위 사진에서 보듯 보관을 쓴 78호는 높이가 83.2cm, 낮은 관을 쓴 83호는 93.5cm로 83호가 10cm나 더 크다. 

두 반가사유상을 오래오래 쳐다보고 빙글빙글 뒤로 돌아가서 살펴보고 다시 앞에서 보고... 한참을 봐도, 어느쪽이 더 마음에 드는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 (누가 물어나 봤나? ㅋㅋ) 둘 다 다른 묘미와 개성과 섬세함을 지닌 보물이라서...

오디오 가이드를 빌릴까 잠시 망설였다가 귀가 피곤해질 것 같아서 패스, 해설사의 설명 역시 좀 들어볼까 따라다니다가 금방 포기했다. 못 알아먹을 용어들도 너무 많고, 아 그냥 내눈으로 보고 감상하면 그만이지 싶었다. 

전시실 초반에 인도의 두 지역 불상이 재료부터 붉은 사암, 검은 편암으로 나뉘면서 옷 주름이 어떻고 소라모양의 머리가 어떻고.. 그럴 때부터 머릿속이 마구 꼬였다. ^^; 석가모니 부처니, 미륵불이니, 관음보살이니.. 불상도 종류가 또 좀 많은가. 째뜬 섬세한 부조와 조각장식, 다양한 석불, 청동, 금동 불상을 원없이 구경한 것 같다. 

하지만 두 반가사유상과 함께 가장 흥미로웠던 건 다리부분만 남아있던 신라시대의 <아주 거대한 반가사유상>?? 안타깝게도 일부만 남아있지만 제대로 된 모양이라면 키가 3미터에 달했을 거라는 거대한 석상이 전시실 후반부에 뙇~ 놓여있는데, 대체 그런 석상을 올려놓으려면 대웅전 전각을 얼마나 크게 지었어야 할지, 아니면 실외에 두었던 것인지, 좌대는 또 어떻게 꾸몄을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라는 (아마도 지도교수인듯) 어느 대학생 인솔자의 이야기에 나도 귀가 솔깃했다. 석굴암을 봐도 그렇고 불상은 금동이든 청동이든 석상이든 역시나 신라시대가 최고봉? 

내 욕심 같아선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시대별 대표 불상을 죄다 보여줬으면 싶었으나 뭐 이 정도로도 만족. 하기야 이보다 불상이 더 많았으면 더 헷갈리고 멀미났겠지. ㅋㅋ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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