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20.04.28 초록 이름 2
  2. 2020.04.23 철마다 옷타령 3
  3. 2020.04.20 엄마의 미투 3
  4. 2020.04.02 2020 벚꽃일기 1

초록 이름

놀잇감 2020. 4. 28. 14:58

그동안 절대 없었을 리는 없고, 어떻게든 꽁꽁 감추어져 있던 추악현 현실들이 하나하나 드러나는 것이겠지만 연일 뉴스를 보는 게 겁나고 끔찍할 만큼 믿어지지 않는 소식들이 들려온다. N번방 수사는 아직도 지지부진, 26만명의 명단공개는 멀기만 하고, 소아성애자 성범죄자가 어엿하게 능력있는 남교사로 활약하고, 판사들은 아직도 디지털성착취범죄자들의 형량이 3년이면 적당하다고 한단다. 미칠노릇이다. 얼마나 더 독하게 마음먹고 쌈박질을 해대야하는 건지...

암튼 그래서 머리도 식힐겸 창밖으로 연두색과 초록색의 중간쯤으로 변한 이파리들을 보다가 대체 저 오묘한 색깔은 무어라 불러야하나 궁금증이 일었고... 첫 직장시절 회사에서도 귀한 자료였으며 지금까지도 쓸데없이 갖고 싶어하는 팬톤 컬러북 색상표를 검색해보았다. 팬톤에서 붙인 컬러마다 다 따로 색깔 이름이 있긴 한데 일단 후르륵 찾아본 이미지엔 컬러 이름이 안 들어있네..  

 

순서조합이 좀 달라지긴 했지만 초록색 범주에 붙인 이름과 이미지는 찾았다. 채도가 좀 다르긴 하지만 팬톤컬러와 연결되지 않을까? 한가하진 않지만, 마음을 정화하는 의미로 하나하나 우리말로 옮겨봐야겠다. ^^; 얼핏 보니 허브와 채소 이름이 많아서 아마도 대부분은 그냥 외래어 표기가 될 듯. ㅠ.ㅠ 

Lime 라임   Leaf 잎사귀   Sage 세이지   Pine 소나무   Kelly 진초록

Shamrock 토끼풀   Olive 올리브  True Green 참초록   Turtle 초록거북   Froggy 초록개구리

Asparagus 아스파라거스  Green Apple 연두(초록?)사과  Darkest Green 검초록   Bright Green 밝은초록  Barista 바리스타

Grass 풀빛   Cucumber 오이   Mint 민트    Lilly Pad 수련잎  Forest 숲

Holly 호랑가시나무  Parrot 앵무새   Celery 셀러리  Kiwi 키위   Army 군복(군초록?)

나중에 초록빛깔 묘사가 나오는 책을 번역할 때 참고해야겠다고 생각하니 뿌듯하지만 그땐 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좋겠다. 암튼 잠깐 눈이 시원해지면서 행복했다. 나의 최애 색깔은 늘 파란색 계통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요즘은 초록 연두 빛깔들이 점덤 더 좋아진다. 사실 가장 좋아하는 색이 무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다. 옷색깔이라면야 푸른계통, 검정색이 제일 좋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냥 색깔만으로는 예쁜 색들이 좀 많은가. 형광분홍색 계통을 대체로 극히 싫어하긴 하지만 또 꽃으로 피어났을 땐 군말없이 아름답다 여기게 되므로, 색깔에 관한 한 선호하는 색깔과 나에게 어울리는 색깔, 자연에서 아름다운 색깔은 모두 다르고 그래서 몽땅 다 예쁘다는 게 정답. 점점 더 진해지는 초록빛깔에 지치기 전에 영롱한 연두, 잎사귀, 풀빛, 연잎, 참초록, 초록개구리 색깔들을 하나하나 눈에 더 많이 담고 싶다. 열심히 창밖 잎사귀와 색상표를 비교한 결과... 오늘 햇빛 속의 벛나무 잎은 pms370초록개구리 빛깔에 가장 유사한 것 같다. 

Posted by 입때
,

철마다 옷타령

투덜일기 2020. 4. 23. 11:08

곤도 마리에의 책은 한권도 안 읽어봤지만 설레지 않으면 버리라는 그 사람의 정리 원칙은 정말 많이 들어보았고 공감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단촐하게 정리하고 살며 미니멀리즘을 추구하고 싶어도, 그건 넓은 공간과 수납장이 확보된 사람만 누릴 수 있는 호사일뿐, 수십년된 집에서 수십년된 물건에 둘러싸여 비어 있는 벽이 하나도 없는 옛날 집에 붙박이로 살면서 웬 미니멀리즘! 거기다 우리 모녀는 물건을 잘 버리지도 못한다.

암튼 여러 물건 가운데 가장 골칫거리는 역시나 옷이다. 계절별로 10벌인가 5벌만 남겨두고 다 버린 뒤 돌려입고 살라는 충고도 어디선가 본 것 같다. 하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입을 옷이 없는것 같은 기묘한 현실 앞에서 과연 그게 가능할까? 요즘 밀라논나 장명숙님의 유튜브를 구독중인데, 30년씩된 옷도 아직 고쳐입고 갖고 있는 걸 보면서 음.. 과연 나도 체중관리만 계속 잘 하면 그리고 욕심만 버리면 가능도 하겠단 생각이 들면서도, 과연 내 옷장에 든 옷 중에서 2, 30년씩 계속 입을 만큼 기본기가 확실하고 가치있는 옷이 얼마나 되려는지 의문도 덩달아 따라온다.

물론 내 옷장에도 20년된 재킷이나 셔츠, 정장이 있다. 우선 두 동생들 결혼할 때 장만한 정장이 두벌. 둘 다 기본형이고 원단도 고급이라 지금 입어도 훌륭하다. 다만 내가 그렇게 딱 떨어지는 정장에 몸을 맞춰 딱딱하게 유지하는 걸 못견디는 것이 문제다. 그 외에도 결혼식 교복이라 부르는 정장류 옷들이 거의 다 15년 이상 20년은 된 듯하다. 옛날처럼 결혼식 갈 일이 자주 없어서 어찌나 다행인지! ㅋ (그러나 머잖아 친구들의 자녀 결혼식이 다가오겠지;;)

째뜬 철마다 옷타령을 하는 건 전 국민, 아니 전지구인의 특징일 수도 있겠다 싶다. 기억력 탓인가 작년 이맘때 대체 뭘 입었는지 모르겠다는 게 함정. 게다가 들쭉날쑥 이상해진 날씨도 한몫한다. 트렌치코트 같은 건 도무지 입을 타이밍을 모르겠다. 요즘처럼 갑자가 다시 추워져서 패딩입은 사람들도 보이는 4월말. 현명한 옷입기는 뭘까? 든든하게 입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거의 50일만에 미용실에 외출했다 추워서 덜덜 떨며 집에 왔더니 나아가던 감기가 다시 도졌다. 

울 엄마의 경우는 '철마다 옷타령'과 '죽을때까지 더는 옷을 사지 않겠다' 입장을 수시로 반복하신다. 외출을 앞 두고 무얼 입고 나가나, 입을 옷이 왜 없지? 작년엔 뭘 입었지? 고민을 하시는 것 같아서, 옛날 옷들은 주로 좀 무거운 편이니 가벼운 옷으로 하나 장만하자고 하면, 금세 태도가 돌변한다. 나 옷 많다, 80이면 살만큼 살았다, 죽을 때까지 있는 옷만 다 입어도 못 입는다... 실제로 정신건강이 나빠지는 기간이 길어지면 한 계절을 통째로 날리기 때문에 못 입고 넘어가는 옷들이 꽤 많은데, 요번처럼 몇달째 집안에 갇혀 사는 전염병 시국엔 오죽할까. 

올 아카데미시상식의 클라이막스 작품상 시상 장면은 기생충 호명으로 역사에 길이길이 남겠지만, 그보다 먼저 내 눈엔 제인 폰다의 등장으로 더욱 인상깊었다.  당당한 걸음걸이로 어깨에 걸치고 나온 빨간색 코트 때문이었다. 드레스에 웬 코트? 

게다가 제인 폰다는 무려 1937년생. 울 엄마보다도 3살이나 많다! 그런데도 여전히 환경운동가이며 여러 사회문제에 열렬히 목소리를 드러내는 투사다. 그리고 이 빨간 코트는 제인 폰다가 그레타 툰베리를 지지하며 환경운동의 일환으로 더는 환경오염에 일조하는 옷을 사지 않겠다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장만한, 아마도 저항의 의미를 담은  빨간색 코트였던 것.

작년에 제인 폰다는 뉴욕에서 매주 금요일 환경시위를 하면서 일주일에 한번씩 체포되는 행동으로 뉴스에 자주 등장했다.

오른쪽 사진이 바로 그 장면이고 이 때 매주 입었던 빨간색 코트가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에 들고 나왔던 옷이다. 영화제의 한 순간에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치적인 문제를 열심히 전하는 놀라운 태도에 다시 한 번 존경심이 든다.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싼 옷 사서 금세 입고 버리는 패스트패션뿐만 아니라 청바지도 환경오염의 주역이라고 한다. 화학약품으로 물을 들였다 뺐다 하면서 엄청난 물을 사용한다는 듯.  에효.

저날 아카데미 시상식에 제인폰다가 입고 나왔던 드레스 역시 당연히 재활용이었다고 한다. 수십년전 칸 영화제 때 입었던 드레스라는데, 협찬으로 명품 드레스 빌려 입는 우리나라 대다수 연예인들과 상황이 좀 다른 걸까? 암튼 여든살이 넘어서도 수십년전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놀라운 몸관리도 입이 벌어질 정도다.

영화제 직후였나 기생충 작품상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제인 폰다의 빨간 코트 이야기를 꺼냈더니 후배들의 중론이, 제인 폰다는 좋은 옷들이 워낙 많으니 안 사고 입어도 되겠지만 우린 안 돼!  ㅎㅎㅎ

암튼 그래도 더는 살림을 늘이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운지 몇 년. 새 물건을 들이려면 동종의 옛 물품을 버려 가지수라도 맞추자고 노력하며 살았고 가능하면 옷은 사지 않고 버텨볼 작정을 했었다. 작년엔 터져나가려는 옷장과 서랍에서 진짜로 최근 3년간 안 입은 옷들은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정리해 아름다운 가게에 대거 기증했고, 약간 여유로워진 옷장을 보며 꽤 흐뭇했다. 한꺼번에 열벌은 사도 되겠어, 싶은 마음도 들었으나 ㅎㅎ 올 들어선 곧바로 전염병과 함께 소비 심리 위축! 물론 프리랜서의 불안한 경제사정도 감안해야 할 일이다. 

째뜬 제인폰다보다 세살 어린 여든살의 엄마는 오늘 코로나19 창궐 이후 중지 되었던 초하루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거의 4개월만에 처음으로 홀로 버스틀 타고 서오릉 앞에 있는 절까지 외출을 감행하시었다. 그리고 추워진 날씨 '덕분에'  다행이라며 2월에 사드린 새 모직 코트에 스카프를 칭칭 매고 나가셨다. 음. 나는 마지막으로 산 옷이 작년 언제였더라 기억도 나질 않지만 암튼 제인 폰다 따라하기는 우리 모녀 둘 다 쉽진 않을 것 같다. 나이들수록 기분도 옷차림도 추레하면 안되잖아...가 우리에겐 아주 좋은 핑계다. 어쨌거나 저 높은 곳에 목표를 두고 존경하며 계속 노력은 해보는 걸로!  

Posted by 입때
,

엄마의 미투

아픈 손가락 2020. 4. 20. 18:27

Me too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말한다'는 의미라고 여성계에서 암만 말을 해도 여전히 언론에선 미투 옆에 괄호 치고 '나도 당했다'라고 적혀 있다. 아무튼 대한민국 여성으로서 이 땅에 살면서 공공장소의 불법촬영 위험과 성추행, 성희롱의 경험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은 0%일 거라 확신한다. 너무 흔해서 오히려 황당하고 차라리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어 속으로 삭히고 지나간 수많은 상처들.

얼마전 총선을 앞두고 팔순 노모에게 연동형비례제 정당은 어디를 뽑을 예정인지, 어디를 뽑으면 좋겠는지 의논하는 과정에서 N번방에 관해 설명을 드렸다. 파렴치하고 악랄하기 그지없는 성범죄자놈들의 행태와 피해자들의 고통, 언론과 일부 인간들의 2차 가해... "그러길래 좀 조심하지" 따위의 말들이 얼마나 말도 안되는 가해자 중심 언사인지. 그러다가 문득 이제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오래 전 나의 상처가 떠올랐고, 나도 모르게 엄마에게 물었다. 그 옛날 북가좌동 할머니댁에 살 때 우리 이웃에 살던 까까머리 남자애 이름이 해중이 맞아? - 해중이? 아... 정O 동생? 엄마는 종종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며칠인지도 까먹으면서 놀랍게도 옛날 일은 귀신같이 기억한다. 

사실 해중이라는 이름은 나도 요번에 처음으로 기억이 난 거다. 그냥 까까머리 시커먼 얼굴, 더럽고 꾀죄죄한 차림새와 히죽거리는 기분나쁜 웃음, 그리고 뭉뚱그려진 얼굴로만 막연히 기억되는 걸 애써 지우곤 했는데 어쩌다가 퍼뜩 그 이름이 떠올랐을까. 암튼 욕쟁이가 된 지금 난 엄마에게 말했다. 5살 때인지 6살 때인지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해중이 그 새끼가 나한테 엄청 나쁜짓을 했다고. 그간 애써 지우려고 했던 기억이라 정확하진 않지만 중학생 정도 되었던 그놈은 우리 할머니댁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 거의 창고처럼 쓰이덧 마룻방 깜깜한 공간에서 어린 나의 속옷을 벗긴 뒤, 손으로 성추행을 했고, 무섭고 아파서 우는 내게 그 사실을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말하면 죽여버리겠다고 협박을 했었다. 당연히 나는 그 이야기를 당시는 물론이고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왜 그랬냐고? 그리고 이제 와서 왜 그 이야기를 하느냐고? 그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내 잘못인 것만 같았을 테고, 창피해서 숨겨야할 일이라 느꼈을 테고, 놈의 협박이 무섭기도 했겠지.... 이름도 기억 못하는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불안?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나 역시도 그냥 없었던 일로 덮어버리고 싶은 끔찍한 기억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초등학생 때 명절에 한복을 입고 온 가족이 버스를 타고 외갓집에 다녀오던 길, 버젓이 아빠엄마가 옆에 서 있는데도 어떤 나쁜 인간이 공단 한복을 입은 열살 무렵의 내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길을 느끼고도 얼어붙어 아무말 못했었다고, 그 옛날엔 왜 그렇게 성추행범들이 많았는지, 왜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곧바로 부모에게 이르지 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지금 같으면 소리를 질러 피해 사실을 알리고 경찰서로 버스를 몰아 (소매치기범이 있는 경우 옛날엔 정말로 기사 아저씨가 버스 문 안 열고 곧장 경찰서 앞으로 버스를 댄 적이 있었던 걸 경험한 바 있다) 현행범으로 놈을 잡아 처넣었을텐데 말이다. 그뿐인가, 대학 신입생 때 버스에서 성기노출범을 만나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과 둘이 손잡고 엉엉울었던 기억까지 다시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에 출몰하던 온갖 성범죄자들이 이제는 화장실과 지하철에서 불법촬영을 일삼는 것에서 벗어나 무고한 피해자들을 성노예로 만들고 그 영상을 돌려보는 끔찍한 지경에 이르른 것이 N번방의 실태이니, 반드시 성범죄자 관련 처벌법 강화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를 뽑아야한다는 것이 나의 요지였는데... 모녀의 대화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 혐오스럽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담겼다고 생각되어 실제 내용은 접었음.

더보기

사실은 엄마도 그런 일이 있었어... 두 번이나. 

열살쯤 됐던가, O동 국민학교 다닐 때 동네 뒷산에서 노는데, 어떤 남자가 맛있는 걸  사준다며 따라오라고 하길래 멋 모르고 따라갔더니 그 남자가 으슥한 곳에서 바지를 훌떡 내리더니 '내 고추를 먹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놀라서 도망쳤는데, 따라간 자기가 잘못했다 생각해 울 엄마도 결국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단다. 무려 70년 만에 처음으로 나에게 털어놓은 이야기였다.

그런 일은 한번 더 있어서, 한국전쟁때 부산으로 피란을 갔던 시절--40년생인 엄마는 부산에 열린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군무원 고모부의 말을 믿고 가족은 서울에 둔 채 혼자서만 먼저 부산으로 갔었고 학교는커녕 못된 고모의 학대를 받으며 11-12살에 고모네집 식모 노릇을 하며 굶주렸던 일이 있다고 다른 포스팅에서 밝힌 바 있다--아이들에게 초콜릿과 사탕 따위를 던져주며 선심쓰던 유엔군 중 하나가 또 다시 어린 엄마를 초콜릿으로 유인한 뒤 성기를 노출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영국군인'이라고 정확히 국적까지 알고 있고, 그 뒤로는 외국인  남자들만 보면 도망을 다녔단다. 지금도 성범죄자들은 전세계적으로 어디나 존재하지만, 전쟁통에 남의 나라에 와서도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범죄자들이 군인으로 파견되었다니 끔찍하다. 60년대 베트남에 참전한 한국군 중에도 그런 성범죄자들이 수두룩했을 것 같다. 아무튼 엄마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그런 얘기를 어디 가서 하겠니, 창피하게.' 엄마잘못이 아니라니깐요! 역시나 그 일은 엄마가 70여년간 비밀에 붙여둔 또 하나의 끔찍한 기억이었다. 

성추행, 성폭행의 피해자는 생존자이기도 하므로... 나도 더 자세히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다치지 않고 잘 빠져나왔으면 된 거라고, 그 새끼들이 용서 못할 변태성욕자, 소아성애자, 성기노출범, 성범죄자들이라고, 지금 같으면 경찰에 신고해 감방에 쳐넣었어야 한다고 한참 열을 올리며 욕을 해댔지만 그런다고 엄마의 오랜 상처가 단숨에 치유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엄마도 의아해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오래 전 일인데 그놈들이 입었던 옷 색깔까지 기억이 난다면서...

엄마, 그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 거예요. 너무 끔찍한 기억은 뇌에 상처를 깊이 새겨놓기 때문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게 쉽지 않아요... 나 역시 그 해중이 새끼를 비롯해 성추행범, 성기노출범 때문에 꾸었던 악몽이 얼마나 많았던지 새삼 몸서리가 쳐졌다. 

 

내가 해중이라는 놈의 기억을 떠올리면서 촉발된 엄마의 미투 고백을 듣고 보니, 나는 또 궁금해졌다. 70년간 말하지 못했던 성추행의 상처와 자책 역시 결국 엄마의 조울증에 원인이 된 건 아닐까. 원래 울 엄마의 성격은 마음에 있는 이야기는 다 터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쪽이시라던데, 엄마 고교동창생들의 증언을 들어보아도 싸우면 곧장 편지로든 대화로든 풀어버려야지 며칠간 말 안하고 꽁하고 있는 건 절대 못참는 사람이라시던데... 한번도 아니고 두번이나 반복되었던 그 끔찍한 기억을 꾹꾹 파묻고 눌러놓았다면...  ㅠ.ㅠ

전문가가 아니어서 나로선 그냥 그때 그 사건은 어린 시절의 엄마 잘못이 절대로 아니에요, 나쁜 놈들이 그때도 너무 많았고 아직도 너무 많아요. 그러니깐 이제 더는 그런 일 일어나지 못하도록, 혹시나 그런 일이 생기면 제대로 처벌하고 재발을 방지할 수 있도록 우리가 다 같이 노력해야 해요... 그런 원론적인 이야기만 나누는 수밖에 없었다. 허나 일단 엄마도 나도 그 옛날의 성폭행 피해를 외부로 '발화'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한 단계라고 믿는다. 여기에나마 내가 그 개만도 못한 새끼 해중이란 놈의 욕을 쓰면서 제대로 단죄의 욕구와 치유가 시작됨을 느끼기 때문이다.

지난주 초 투표를 하기 직전, 나는 이러저러한 의미로 37개나 되는 비례대표 정당 중에서는 정의당 아니면 여성의당을 찍으시는 게 좋겠다고 추천했었는데... 엄만 과연 그 기다란 투표용지 어디쯤에 기표를 하셨을까. 그간 수많은 어이없는 판결과 솜방망이 처벌을 먹고 자란 N번방 사건수사 과정을 더더욱 유심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나도 엄마도 확고하다. 더는 가만히 있지 않아야 옳으니까.   

Posted by 입때
,

2020 벚꽃일기

투덜일기 2020. 4. 2. 13:49

서울에도 다른해보다 벚꽃이 훨씬 일찍 피어 만개했다는 뉴스를 한참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서북권인 우리집은 확실히 좀 늦었다. 그래도 작년 포스팅을 찾아보니 일주일에서 열흘은 빨리 핀 게 맞다. 작년엔 4월 8일에 기록을 남겼음.

바로 아래 사진은 팝콘 터지듯이 꽃들이 팍팍 피어나기 시작하던 월요일 3월 30일의 모습이다. 계속 날씨도 화창하고 하늘도 파랗고 사진으로만 보면 더할나위 없이 꽃놀이 다니기 딱 좋은 계절인데... 역병시국이기도 하고 마감중이기도 하고, 마음은 바빠도 잠깐씩 베란다 문 열고 나가서 나가서 구경했다. 

 

그러고는 이틀 뒤인 어제. 만우절날의 벚꽃. 집이 동향이라 벌써 해 방향이 넘어가 첫날 점심 먹고 찍은 사진이 우중충했던 게 아쉬워 이날은 오전에 좀 부지런을 떨었고, 끄트머리에 봉우리가 좀 남았어도 젤 예쁘게 찍힌 것 같다. 

 

그리고 드디어 오늘. 가지 맨끝 봉오리까지 다 피었으나... 벌써 맨 처음 핀 꽃들은 다 떨어져 휘날리기 시작했다. 마당 한 가득 하얀 꽃들이 깔려있다. 

좀 더 심혈을 기울여 정성을 다하면 더 예쁘게 찍을 수도 있겠으나 ㅎㅎㅎ 이미 어제 최고의 작품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막 난사하게 됨. 이렇게 잔인한달 4월이 시작되었다. 

Posted by 입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