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봤더라.
흔히 얘기하는 사회적 잣대로 본인의 나이가 꽤 많은지 아닌지 가늠해 보려면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해보라는 데가 있었다.
다 기억나진 않지만, 로터리식으로 채널을 돌리는 TV의 존재를 혹시 아는지...
영화 <타이타닉>을 명절특집 TV 영화가 아니라 극장에 직접 가서 봤는지...
어린시절 흑백사진이 있는지...
뭐 이런 질문이었는데, 물론 난 그 질문에 다 해당이 되었고 ^^
피식 웃으며, 그래 나 나이 많은 거 안다, 된장. 그랬던 것 같다.

윌리 호니스 사진 전시회를 보면서 그토록 흐뭇하고 뿌듯했던 건
거창하고 대단한 느낌의 사회적 이슈를 찍은 사진들보다 (7월 혁명 기념일이라든가..
역시 잘은 기억 안나지만 주먹 불 끈 쥔 아빠의 무동을 탄 어린이의 사진 같은 것도 있긴 했다)
그냥 일상에서 느껴지는 기쁨과 행복을 담은 소박한 느낌의 사진들이 많았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나는 인생을 따라 움직였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길과 동네를 사랑한다"라고 말했다는 그의 사진 철학은 정말로 많은 작품에서 고스란히 느껴져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게다가 현대까지도 고집스럽게 흑백사진만 고집했던 그의 작품들은 어쩐지 낯익고
정겨워, 그간 여기저기에서 볼 기회가 있었던 사진들 이외에도 혹시 우리 집에 그의 낡은 작품집이라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될 정도였다.
새로운 기계 따위를 사들이는 걸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한 때 수동 카메라로 열심히
우리 삼남매를 찍어주시면서 혹시나 참고한 작가는 아니었을까 하는 멋진 상상까지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집에 와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가 찍은 사진과 비슷한 느낌의 흑백사진을 앨범에서 본 것도 같았고, 결국 나는 며칠이 지난 오늘 가장자리가 누렇게 변색된 옛날 앨범을 뒤적이며 흐뭇한 추억에 젖었다.

물론 내 느낌은 그저 개인적인 비약에 불과하고 사진의 구도나 질도 큰 차이가 있겠지만,
꼬마 삼남매의 모습을 담아놓으신 아부지의 사진들에서 나는 꼬마 뱅상의 모습을 찍었던 아버지 윌리 호니스의 흐뭇한 시선을 느꼈고, 그래서 참 행복했다.
이제는 조카들 사진이 아니면 굳이 사진을 공들여 뽑고, 앨범에 넣어 정리하고 그러는 수고를 하지 않게 됐지만, 또 몇십년이 지난 뒤 요즘 남긴 사진을 보며, '아 그래.. 이땐 그래도 제법 창창했구나..'라고 중얼거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 싶더라.

암튼...
잠깐이라도 흑백사진 속의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리고 그 소중학 흑백 추억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몇장 스캔도 해봤는데, 스캐너가 영 시원치않다.

Posted by 입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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