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

안경과 눈물

입때 2009. 8. 14. 21:26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은 절대 모를 일이겠지만, 안경을 쓴 채로 눈물을 흘리고 나면 안경알에 분무기를 살짝 뿌린 것처럼 점점이 미세한 물방울이 말라 붙는다. 처음엔 눈물이 눈물샘에서 솟을 때 화산 용암처럼 분출되는 방울들도 있는 것인가 멍청한 생각을 했었는데, 누가 가르쳐줬다. 눈물 젖은 속눈썹을 들어올리는 순간 미세한 눈물방울이 안경알에 흩뿌려지는 원리일 거라고. 
그 말을 들으니 문득 수채화붓을 물통에 빨고 나서 바닥에 물기를 흩뿌려 말리는 장면이 연상됐고, 축축하게 젖은 속눈썹을 깜박일 때 눈물방울이 딸려올라가 공기중으로 퍼지는 광경을 슬로모션으로 촬영한 광학 카메라 동영상을 상상하며 풋 웃음이 났었다.
안경을 쓴 사람들은 안경알과 속눈썹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탓에 안경알에 보일듯말듯한 흔적을 여지없이 남기는데, 안경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경우 그 작은 눈물방울들은 공기중으로 흩어져 순식간에 말라버리거나 둥둥 떠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공기보다 무거워 뺨에 내려앉는데 흘러내린 눈물에만 신경쓰는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일까? 손닿는 곳마다 안경닦는 천을 두고 수시로 안경알을 닦는데도 매일 더러워지는 안경알을 보며 새삼 궁금해졌다.   

인체가 늙어가면 어떤 노화증상이 나타나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계시는 왕비마마 덕분에 새삼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눈물샘은 나오는 구멍만 있는 게 아니라 들어가는 구멍도 있단다. 눈 앞쪽 눈밑살을 살짝 눌러보면 쉽게 보이는 눈물구멍은 흔히 눈물샘이라고 부르는 눈물 나오는 구멍이고 저기 안쪽으로 어딘가 눈물이 들어가는 구멍도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외부로 눈물을 흘리지 않더라도 사실 눈물은 언제나 조금씩 분비되어 안구의 습기를 유지하고 불순물을 씻어내려 다시 코와 목으로 연결된 구멍으로 내려보내고 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들어가는 눈물구멍이 막히는 수도 있고, 그러는 경우엔 슬프지 않아도 눈에 뭐가 들어가지 않아도 아무때나 대책없이 눈물이 밖으로 넘쳐 주르륵 뺨으로 흘러내린다. 막힌 눈물샘을 뚫거나 인공 눈물을 수시로 넣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듯 불편하면 눈물 들어가는 구멍을 수술로 다시 뚫어야 한단다. 사람 몸에서 나오는 여러 분비물 가운데 유일하게 천대받지 않을 뿐더러 문학적으로 낭만적으로 상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눈물의 또 다른 신비다.
슬플 때의 눈물과 기쁠 때의 눈물, 화날 때의 눈물은 다 성분이 조금씩 다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이들수록 눈물의 순도가 떨어져 탁해지니 위험한 콘택트렌즈 대신 안경을 상용하라는 사실을 통보받았을 땐 약간 충격을 받기도 했었다. 늙기도 설워라커든 눈물조차 다르다니. 그렇다면 앞으로는 안경알에 튕긴 미세한 눈물방울도 점점 더러워질 거라는 얘기. 안경 닦는 천이 오래 된 탓인지 오늘따라 안경을 닦아도 닦아도 성에 차질 않는다. 이미 탁도가 극심해진 눈물방울이 튕겼기 때문이려나. 별 게 다 신경에 거슬리는 더운 여름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