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잇감
쌍화점 + 워낭소리
입때
2009. 3. 4. 00:21
<남녀상열지사-스캔들>로 사극영화에 대한 내 눈이 너무 높아졌기 때문에 이후 사극들은 대부분 실망스러웠고 딱히 봐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쌍화점>도 나만의 게으름 수준으론 호기심이 일기는 했으나 결국 놓쳐버리기 쉬웠을 영화였다. 하지만 조인성과 주진모의 아리따움을 꼭 나와 함께 보고 싶다는 지인의 부지런한 검색 덕분에 개봉관에선 이미 내린 이 영화를 씨네큐브의 이대 분관인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미술감독 기획전의 일환으로 예매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영화를 보기 전날밤, 공교롭게 주진모가 백상 연기상을 타는 바람에 조인성의 엉덩이와 별도로 주진모의 연기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증폭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 김기철 미술감독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보니, 내눈엔 어째 몹시 거슬리는 중국풍의 인테리어와 의상들도 그러려니 용납할 수 있었다. 어차피 원의 부마국 지위인 고려 궁궐에 중국풍의 소품들이 가득 차있는 걸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차피 고증에 참고할 자료들도 거의 없는 마당이니 나머지 여백은 상상력으로 채워도 무방했단 말이 맞다. 이야기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역줄거리가 연상되는 레이스 같은 옷깃들은 좀 과했다 싶었다.
어쨌든, 나에게 <쌍화점>은 충격이었다. 내가 한국영화 자주 안 본 사이에 노출 수위가 그렇게 높아졌었나 싶게 놀라운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거슬렸다기 보다는, 작품성보다 마케팅에 우선적으로 이용되었을 영화의 선정성이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감상을 방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죽여가며 본 주진모, 조인성, 송지효의 연기는 예상외로 모두 좋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막으로는 조인성이 제일 먼저 나오던데 연기로는 역시 주진모가 상을 탈만하다 싶었고, 그의 눈빛과 눈물에 제일 마음 아팠다. 영화에 삽입된 가시리와 쌍화점 노래가 멋지단 얘기를 원래부터도 듣고 갔지만, 예상보다도 더 좋더라. 고려가요를 다시 공부해보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지나친 피칠갑 장면들은...
유하 감독의 영화를 내가 잘 못보는 건 역시나 그 처절한 격투 장면 때문이다. 조폭도 싫고 싸움도 싫어서 <비열한 거리> 같은 영화는 아예 볼 생각도 하질 않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도 보게 된다면 잔혹한 싸움질 장면마다 피 튀기는 걸 못 견디겠어서 눈을 감고도 또 손으로 눈을 가리는 건 내 버릇이다. 앞으로도 이 감독의 영화를 또 보는 기회가 생기면 미리 마음 좀 더 다잡고 가야겠다.
아무려나... 턱없는 제작비에 맞추느라 왕의 공간으로 세트를 꾸며 일주일 찍은 다음에 다시 뜯어서 다시 왕비의 공간 세트를 만들어 또 일주일 찍는 재활용을 감행해야 했으며, 칼 하나도 우리나라에서 쇠로 제대로 만들면 2백만원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오면 40만원에 불과하니 5백자루쯤 되는 칼은 물론이고 의상도 대부분 중국에서 제작해 들여와야 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뒤늦게라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준게 잘했다 싶었다.
<워낭소리>가 관객 2백만을 돌파할 거라는 뉴스가 나온 바로 그 주말에 나도 일조를 했다.
원래 떼거리로 우르르 휩쓸리는 걸 싫어해서 베스트셀러도 잘 안 읽고 너무 잘 나가는 영화는 보기 싫은 심술이 작용하는 바람에 처음엔 보고싶었다가 최근 들어서는 그냥 건너뛰려고 했었는데, 왕비마마가 보고싶다는 한 마디에 그냥 못이기는 척 넘어갔다. 몇년 째 씨네큐브에 다녀봐도 객석이 절반 이상 차는 걸 거의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울 엄마 같은 어르신들이 부부동반으로, 가족동반으로 엄청 몰려들더라. 이 추세라면 3백만 돌파도 어렵지 않겠구나 싶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심술이 동했다.
나 역시 여러 번 눈물을 쏟았고 감동스러운 장면들이 많기는 했지만, 작품성으로 따져볼 때나 이야기 면에서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의 최고 걸작도 아니고 힘겨운 독립영화 제작 현실에서 어떤 기준이 되어서도 안될 작품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흥행 때문에 이 영화가 단순한 인간들의 탁상공론에서 본보기 같은 것으로 자리잡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듯 싶다. <워낭소리>의 감동을 이어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계속 보라는 마케팅에 힘쓰고는 있던데 과연...
<워낭소리>에서 내가 제일 눈물을 쏟았던 장면은 비틀비틀 어렵사리 걸음을 옮기는 누렁소의 다리와 나란히 옆에서 움직이던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다리가 비춰졌던 순간, 그리고 수의사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합니다"라고 말했던 순간인 것 같다. 누구의 죽음이든 절대로 마음의 준비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의사나 수의사는 알고나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제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집스러운 노동에서 좀 벗어나 편한 삶을 누리고 계시면 좋겠다. 영화배경이 된 봉화와 그 마을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 정신나간 인간들의 들쑤심에서 부디 온전하시기를.
영화를 보기 전 김기철 미술감독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보니, 내눈엔 어째 몹시 거슬리는 중국풍의 인테리어와 의상들도 그러려니 용납할 수 있었다. 어차피 원의 부마국 지위인 고려 궁궐에 중국풍의 소품들이 가득 차있는 걸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고, 어차피 고증에 참고할 자료들도 거의 없는 마당이니 나머지 여백은 상상력으로 채워도 무방했단 말이 맞다. 이야기에 방해만 되지 않으면 그만이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역줄거리가 연상되는 레이스 같은 옷깃들은 좀 과했다 싶었다.
어쨌든, 나에게 <쌍화점>은 충격이었다. 내가 한국영화 자주 안 본 사이에 노출 수위가 그렇게 높아졌었나 싶게 놀라운 장면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거슬렸다기 보다는, 작품성보다 마케팅에 우선적으로 이용되었을 영화의 선정성이 어쩌면 세 사람의 사랑 이야기 감상을 방해했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숨을 죽여가며 본 주진모, 조인성, 송지효의 연기는 예상외로 모두 좋았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막으로는 조인성이 제일 먼저 나오던데 연기로는 역시 주진모가 상을 탈만하다 싶었고, 그의 눈빛과 눈물에 제일 마음 아팠다. 영화에 삽입된 가시리와 쌍화점 노래가 멋지단 얘기를 원래부터도 듣고 갔지만, 예상보다도 더 좋더라. 고려가요를 다시 공부해보고 싶어질 만큼.
하지만 지나친 피칠갑 장면들은...
유하 감독의 영화를 내가 잘 못보는 건 역시나 그 처절한 격투 장면 때문이다. 조폭도 싫고 싸움도 싫어서 <비열한 거리> 같은 영화는 아예 볼 생각도 하질 않는 사람이 바로 나다. 그래도 보게 된다면 잔혹한 싸움질 장면마다 피 튀기는 걸 못 견디겠어서 눈을 감고도 또 손으로 눈을 가리는 건 내 버릇이다. 앞으로도 이 감독의 영화를 또 보는 기회가 생기면 미리 마음 좀 더 다잡고 가야겠다.
아무려나... 턱없는 제작비에 맞추느라 왕의 공간으로 세트를 꾸며 일주일 찍은 다음에 다시 뜯어서 다시 왕비의 공간 세트를 만들어 또 일주일 찍는 재활용을 감행해야 했으며, 칼 하나도 우리나라에서 쇠로 제대로 만들면 2백만원인데 중국에서 만들어오면 40만원에 불과하니 5백자루쯤 되는 칼은 물론이고 의상도 대부분 중국에서 제작해 들여와야 했다는 후일담을 들으니 뒤늦게라도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준게 잘했다 싶었다.
<워낭소리>가 관객 2백만을 돌파할 거라는 뉴스가 나온 바로 그 주말에 나도 일조를 했다.
원래 떼거리로 우르르 휩쓸리는 걸 싫어해서 베스트셀러도 잘 안 읽고 너무 잘 나가는 영화는 보기 싫은 심술이 작용하는 바람에 처음엔 보고싶었다가 최근 들어서는 그냥 건너뛰려고 했었는데, 왕비마마가 보고싶다는 한 마디에 그냥 못이기는 척 넘어갔다. 몇년 째 씨네큐브에 다녀봐도 객석이 절반 이상 차는 걸 거의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울 엄마 같은 어르신들이 부부동반으로, 가족동반으로 엄청 몰려들더라. 이 추세라면 3백만 돌파도 어렵지 않겠구나 싶어서 한편으로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다시 심술이 동했다.
나 역시 여러 번 눈물을 쏟았고 감동스러운 장면들이 많기는 했지만, 작품성으로 따져볼 때나 이야기 면에서 <워낭소리>는 다큐멘터리 독립영화의 최고 걸작도 아니고 힘겨운 독립영화 제작 현실에서 어떤 기준이 되어서도 안될 작품이다. 그런데 예상 밖의 흥행 때문에 이 영화가 단순한 인간들의 탁상공론에서 본보기 같은 것으로 자리잡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를 하는 사람이 나 혼자만은 아닐 듯 싶다. <워낭소리>의 감동을 이어 다른 다큐멘터리 영화들도 계속 보라는 마케팅에 힘쓰고는 있던데 과연...
<워낭소리>에서 내가 제일 눈물을 쏟았던 장면은 비틀비틀 어렵사리 걸음을 옮기는 누렁소의 다리와 나란히 옆에서 움직이던 할아버지의 가느다란 다리가 비춰졌던 순간, 그리고 수의사가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합니다"라고 말했던 순간인 것 같다. 누구의 죽음이든 절대로 마음의 준비가 되지는 않는다는 걸 의사나 수의사는 알고나 이야기하는 것일까.
어쨌거나 이제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고집스러운 노동에서 좀 벗어나 편한 삶을 누리고 계시면 좋겠다. 영화배경이 된 봉화와 그 마을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겠다는 정신나간 인간들의 들쑤심에서 부디 온전하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