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라틴아메리카 거장전
미술관이나 박물관엘 가려면 미리 공부를 좀 하고 가야 더욱 폭 넓은 감상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게을러터진 내가 미리미리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 작가와 작품을 미리 알아보고 책이라도 한 권 찾아보는 때는 지극히 드물다. 대부분은 그냥 준비 없이 불쑥 가서 예상 밖의 감동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라고 변명은 하지만, 그림은 확실히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게 옳다.
째뜬 아무 준비 없이 프리다 칼로 그림이 하나쯤은 왔겠지 싶은 마음으로 찾아간 전시회는 대체로 좋았다.
덕수궁 뜰엔 범불교도 대회를 마친 사람들이(아무래도 지방에서 상경하신 듯) 삼삼오오 한가롭게 거닐었고
미술관 앞 계단에 앉아 쉬는 사람들도 꽤나 많았지만 그에 비해서 전시장 안은 한산한 편이었다.
오디오 가이드 이어폰이 국립박물관에서 본 것과 똑같기에 귀 아플 것 같아 아예 빌릴 생각도 안하고
반갑게 매시간 정각마다 있는 도슨트의 설명에 기대를 했는데, 매시간 설명이 있다는 건 그만큼 설명이 간단하고 빨리 끝난다는 사실을 왜 짐작 못했을까. -_-;;
과거 덕수궁 미술관의 도슨트 설명은 대체로 꼼꼼하고 정성스러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때는 하루에 두세번 밖에 설명이 없긴 했다) 찬찬히 중남미 현대미술사를 조망해준 건 좋았지만, 이번엔 그림 설명이 너무 부실했다. 나중에 보니 우리 다음 시간대의 도슨트는 그림 위주로 훨씬 더 설명을 자세히 해주는 바람에 1층 전시실은 다시 따라다니기도 했다. 어딜 가나 복불복, 운이 좋아야한다는 걸 실감했음. -_-; 오디오 가이드도 전체 그림을 설명해주는 게 아니니, 그저 제대로 감상을 원하면 미리 공부해두는 수밖에 없다.
오늘 덕수궁 미술관 홈페이지에 가보니, 궁금했던 작품들 설명을 그래도 간간이 볼 수 있었다. 전시회에 가실 분이 있거든 참고하시길.
중남미 미술가에 대해선 프리다 칼로와 그 남편 디에고 리베라, 딱 두 사람밖에 모르는 주제에 멕시코, 베네수엘라, 페루, 콜럼비아, 도미니크 공화국 등지의 국민화가들을 난생처음 만난다고 생각하니 민망하면서도 뿌듯했다. 그들의 민중미술이 우리나라 민중미술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도 금시초문이었는데, 벽화운동을 위주로 꾸민 제1전시실에선 확실히 낯익은 검은 외곽선과 색감들이 느껴졌다. 4군데 전시실에서 각각 다른 주제로 작품들을 전시해놓았는데 역시 나는 초현실주의와 구성주의, 옵티컬 아트 쪽 그림들보다는 현실적인 그림들이 더 좋았다. ^^; 달걀을 깨뜨려 세운 콜럼버스처럼, 당연한 것 같지만 최초의 발상으로 세계적인 화가로 칭송받는다는 루시오 폰타나의 '칼로 그어놓은 캔버스' 같은 그림은 무식한 내게 아무 감흥도 주지 못했다. 쳇!
아 물론, 모나리자 그림은 이번 전시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보테로가 은근히 한국에 팬이 많은 모양으로 화집과 포스터가 인기리에 판매되고 있었다.
나 역시 색감을 탓하며 겨우 두 장밖에 고르지 못한 엽서 중 하나는 보테로의 귀여운 그림이다.
기대했던 프리다 칼로는 따로 작게 방이 마련되어 있기는 했지만 엽서만한 초기작들을 포함하여 그림이 몇개 되지 않아 실망하려는 찰나, 그나마도 규모가 작은 어느 프리다 칼로 미술관의 그림들을 통째로 빌려온 거라는 말에 위안을 삼아야 했다. 하기야, 그림 수가 중요한 게 아니니 소품 몇점으로도 얼마든지 미술관을 유지할 수야 있겠지. 그나마도 교체전시를 조건으로 빌려왔는데, 그쪽에서 원한 한국 미술가는 백남준 한 사람 밖에 없었다나. 우리나라는 미술후진국이어서 전시를 기획해도 늘 엄청나게 비싼 대여료를 내야한다니 참 치사스럽다.
치사스러우면서도 그림구경이 좋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현대화가들이어서 저작권 문제가 있는지, 이번 작품들은 미술관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가 없으니 퍼다 올릴 수가 없군.
왼쪽 그림은 엽서만한 프리다 칼로의 초기작을 전시장 안 복도에 확대해서 걸개그림으로 걸어놓은 걸 폰카로 찍어온 것.
아기처럼 통통한 손에 붉은 알반지를 낀 보테로의 <시인> 그림도 걸려 있었지만 귀찮아서 찍어오진 않았다. ㅎㅎ
이번에도 아트숍에서 도록을 팔고 있는데 자그마치 3만원.
인쇄상태와 색감이 그리 훌륭하지 않아, 라며 여우의 신포도 이론을 적용하고 옆으로 눈을 돌리니 작년에 본 장 뒤뷔페 도록이 단돈 8천원에 판매중이었다. *_* 요새 웬만한 얇은 책도 죄다 만원을 넘는데!
이미 색감이 어땠는지 기억이 아스라해진 마당에 파격적인 세일 도록을 안 살 수야 없지! 냉큼 사들고 뿌듯해하며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고흐 전시회 때는 미리 예매해서 샤갈 도록(얇긴 하지만)을 받았고
이번 라틴아메리카 전시회에선 뒤뷔페 도록을 장만했다.
다음에 또 덕수궁 미술관을 찾으면 라틴아메리카 전시회 도록도 세일하고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