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꾸러미

안경 욕심

입때 2007. 11. 19. 15:50
안경을 쓰는 사람이 다들 그런지 어쩐지는 모르겠는데...
내 경우 자꾸만 새로운 안경테를 쓰고 싶어진다.
그렇다고 쉽사리 지름신을 받아들이는 인간도 아니다 보니
새 안경 갖고 싶다고 마음을 먹게 되면 몇달간은 머릿속으로만 내가 진정 원하는 안경이 무엇인지
고민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 결국 평균 1, 2년에 한번 정도 새 안경을 장만한다.

안경테도 유행에 워낙 민감한 탓도 있지만
난 또 유행과 상관없이 한 번 끼고 싶은 테는 껴봐야 직성이 풀리기 때문에 -_-;;
그간 자주 번갈아 끼고 지내는 안경 두 개 말고도 그 전에 3년 넘게 주야장천 끼고 살았던 거랑
할머니 유품에 렌즈만 바꿔 낀 것,
동그란 무테 안경이 쓰고 싶어져서 안경사의 만류를 무릅쓰고 내 상상대로 디자인(?)해 렌즈를 커다란 동그라미로 오려낸 무테안경,
그리고 봄부터 끼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드디어 오늘 맞춰 낀 검은뿔테 안경까지...
총 6개인가보다.
그나마 재작년부턴 시력이 더 나빠지질 않아서 한꺼번에 렌즈 다시 맞춰끼느라 목돈 들어갈 일이 없어서 다행...
아, 맞다. 테가 마음에 들어서 미리 장만해두고 렌즈는 아직 끼지 않은 안경도 하나 있다. ㅋ
선글래스는 물론 별도;;;

시력이 달라져서 무용지물로 변해 책상서랍 어딘가에서 뒹굴던 안경도 두어 개는 될 텐데
그건 아무래도 버리게 될 것 같다.

내가 처음 안경을 낀 건 고1때.
그땐 안경을 하나 맞췄다가 좀 지나 시력이 달라지면 테는 그대로 두고 렌즈만 바꾸는 것을 당연하다 여겼다.
하지만 계속 똑같은 안경을 끼기 싫은데 안경테가 너무 멀쩡해서 대학 다니던 시절 한번은 일부러 안경 다리를 부러뜨렸던 적도 있었던듯 ㅋㅋ
우리 집에선 안경을 쓰는 사람이 아버지와 나밖에 없었는데, 검소한 아버지는 안경테가 망가지지 않는 한 렌즈만 바꾸는 것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셨기 때문이다.
그러다 졸업을 하고 회사에 다니게 되니 콘택트렌즈를 껴야했다.
면접보러 갈 때부터 조교 언니가 안경 벗고 가라고 신신당부를 했기 때문에 맨눈으로 뵈는 것도 없이 면접을 하고 나서 취업이 결정되고는 부랴부랴 렌즈를 맞췄더랬다.
지금 생각하면 왜 굳이 안경을 벗고 면접을 봐야했는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때 유행하던 안경은 두툼하고 커다란 뿔테였기 때문에 답답해보였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그러다 내가 콘택트렌즈를 포기하고 안경으로 완전히 돌아서게 된 것은 2000년.
그 전에도 밤샘 작업이 많은 날엔 눈이 빡빡해 렌즈를 끼기가 힘들어 안경을 낄 때가 많아지긴 했지만
늙다리 대학원생으로 살아가면서는 도저히 렌즈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눈이 피곤했다.
설상가상 안과엘 갔더니 인간 나이 30살이 넘으면 눈물의 양도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순도도 떨어지기 때문에 웬만하면 안경끼고 살라는 충고를 듣고 보니, 시력교정 수술을 하지 않는 한 안경은 내 삶에 필수적인 존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나 역시 시력교정 수술을 생각해본 적도 있기는 했는데
일단 "눈을 깎아낸다"는 시술 방법도 너무 무섭고 비용도 만만치 않아 전전긍긍 고민하다
누군가 라식 수술 후 부작용으로 시각장애인이 됐다는 뉴스를 접하고는 확실하게 수술을 포기했던 것 같다.
그러곤 수술 포기 기념으로 수술비의 "5분의 1밖에" 안된다며 사상 최고가의 안경을 장만하기도 했다.

그에 비하면 오늘 맞춘 안경은 소박한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데...
테보다 렌즈 가격이 더 비싸다 보니 드디어 소망하던 검은 뿔테 안경을 끼게 되서 기쁘긴 하지만
굳이 꼭 필요하지도 않은 사치를 또 부린 것 같아 동시에 죄책감도 든다.

수도원을 떠나는 어떤 수녀님의 짐이 작은 가방 하나에 다 들어가는 걸 보고
반성하며 단촐한 삶을 살겠노라 다짐했다던 이의 글을 읽고선
나 역시 욕심을 버려야한다고 다짐한 게 불과 며칠 전 같은데
이 무슨 충동인지... 작년부터 사고 싶어했던 레이스업슈즈도 사고 싶고
캐시미어 질감이 좋은 코트도 장만하고 싶고 (작년엔 알파카 코트 일색이라 수백만원짜리 명품 아니면 아예 캐시미어 코트가 시중에 없어서 나에겐 너무 좋았는데!)
LP판 들을 수 있는 전축도 사고 싶다. -_-;;;
이 욕심을 어찌할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