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보따리
책 장사
입때
2007. 10. 9. 15:50
대학에 다니던 시절 꼭 자기가 쓴 책을 주교재나 부교재로 쓰는 교수들이 있었다.
하다못해 숙제로라도 읽어서 내라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을 찾아보면 출간된지 10년도 더 된
구태의연한 느낌의 양장본이었고 가격도 꽤 비쌌다.
1, 2학년땐 투덜거리면서도 멋모르고 책을 다 사곤 했지만 나중엔 요령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을 하거나
친구들끼리 한 권을 사서 돌려보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양과목의 경우 수강하는 학생들 인원이 꽤 되니까 그들이 책을 다 새로 산다고 가정했을 경우엔 출판사에서 새로이 천부 이상 찍어내는 결과를 낳았을 것 같다.
그래봤자 손에 쥐는 인세가 푼돈이기는 했겠지만^^;; 한번 쓴 책으로 교수 평가 때 생색도 내고
또 그걸로 해마다 푼돈도 벌고 나쁘진 않았겠지 싶다.
하지만 나 같으면...
도저히 학생들에게 책장사를 하려 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짙다.
정말 훌륭한 책이라 저절로 팔려나가는 거라면 몰라도 어떻게 제자들한테 자기 책을 팔아달라고
강권하거나 은근히라도 압력을 넣는단 말인가!
여기에도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 공동번역 논문집의 경우,
대학 출판부에서 기획한 책이기도 했지만 페미니즘을 주제로한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당연히 대중적이 아니어서 출판사에서도 우리들도 잘 팔릴 것이라고는 애당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이 나온 뒤 증정본을 받으러 셋이 함께 간 자리에서, 출판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그 책을 교재로 쓸만한 강의는 안하시느냐고. ^^
그 책은 선생님들(그쪽에서 우리들을 지칭한 거다)이 나서서 팔아주셔야 하는 거라고.
헉.
교수님은 몰라도 나와 또 한 명은 강의 따위에 관심도 없는 터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손사래를 쳤고
교수님 역시 강의하면서 자기 책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더욱이 자기 학교 아이들은 '페미니즘 비평'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젓는다면서...
증정본을 받아들고 출판부 사무실을 나서며 우리 세 옮긴이들은 아마 그 책이 초판 1000부를 소화하기도 힘들지 모른다면서, 그냥 오랜 작업을 마침내 끝내고 책도 선을 보인 기념으로 우리끼리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한답시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더랬다. ^^
그래서 몇년 만인 얼마 전 2쇄 1000부에 대한 번역 인세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약소한 인세는 젖혀두고라도 꽤나 놀랐던 것 같다. 아니,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이 1000부나 (물론 언론사 증정본이 또 몇백 부 소요된다 ㅋㅋ) 팔렸다니!
그 대학 출판부야 뭐 대학 소속이니 판매 부진하다고 망할 염려는 없을 테고, 학교 주축의 문화사업 일환으로 계속 꽤나 쓸만한 책을 많이 내고 있는 듯하니 나로선 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나에게도 그 책은 '공역'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경험이고 성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인세 계약으로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얼마 전 출간되어 따끈따끈한 증정본과 함께
초판 3000부에 대한 인세를 받고 보니, 역시나 은근히 책 홍보에 나도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_-;;
꽤나 좋은(그러나 잘 팔리진 않는 '인문학 양서들') 국내기획물들을 많이 출간해왔던 그 출판사로선 나름대로 좀 팔아보겠다는 요량으로 기획한 번역물이다보니, 분야는 내가 죄다 그밥에 그나물이라면서 마뜩찮아하는 '자기계발서'다.
그런 책을 나더러 좋은 책이라 주변에 선전을 하라고?
에잇,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P
(그러면서 왜 번역은 맡았느냐고? ㅎㅎ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그곳 편집장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번역을 의뢰받을 즈음엔 작업 스케줄에 여유도 좀 있었고...)
어쨌거나 난 이번에도 그저 모르는 척 눈감고 지켜보기만 할 테다.
당연히 책 장사는 출판사에서 하는 거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게다가 내 가족이며 지인들은 정말 책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책 많이 읽으시는 이웃 블로거분들께 추천할 책은 또 절대로 아니다! ㅋㅋ
흠...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결국 내 얼굴에 침뱉는 격이 되었고나야.
나도 늘 좋은 책을 스스로 기획해서 번역 출간으로 이어보겠다는 '꿈'은 지니고 살지만
주어지는 일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니, 권수로는 나름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질 면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부끄러운 인생이다.
10년쯤 뒤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주변에 널리 추천할 번역서들이 내 약력에 콕콕 박혀있게 되기를
빌어본다.
하다못해 숙제로라도 읽어서 내라는 경우도 있었는데 책을 찾아보면 출간된지 10년도 더 된
구태의연한 느낌의 양장본이었고 가격도 꽤 비쌌다.
1, 2학년땐 투덜거리면서도 멋모르고 책을 다 사곤 했지만 나중엔 요령이 생겨 도서관에서 빌려 제본을 하거나
친구들끼리 한 권을 사서 돌려보는 것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교양과목의 경우 수강하는 학생들 인원이 꽤 되니까 그들이 책을 다 새로 산다고 가정했을 경우엔 출판사에서 새로이 천부 이상 찍어내는 결과를 낳았을 것 같다.
그래봤자 손에 쥐는 인세가 푼돈이기는 했겠지만^^;; 한번 쓴 책으로 교수 평가 때 생색도 내고
또 그걸로 해마다 푼돈도 벌고 나쁘진 않았겠지 싶다.
하지만 나 같으면...
도저히 학생들에게 책장사를 하려 들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짙다.
정말 훌륭한 책이라 저절로 팔려나가는 거라면 몰라도 어떻게 제자들한테 자기 책을 팔아달라고
강권하거나 은근히라도 압력을 넣는단 말인가!
여기에도 몇번 언급한 적이 있는 공동번역 논문집의 경우,
대학 출판부에서 기획한 책이기도 했지만 페미니즘을 주제로한 논문들을 모아놓은 책이라 당연히 대중적이 아니어서 출판사에서도 우리들도 잘 팔릴 것이라고는 애당초부터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이 나온 뒤 증정본을 받으러 셋이 함께 간 자리에서, 출판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말했다.
혹시 그 책을 교재로 쓸만한 강의는 안하시느냐고. ^^
그 책은 선생님들(그쪽에서 우리들을 지칭한 거다)이 나서서 팔아주셔야 하는 거라고.
헉.
교수님은 몰라도 나와 또 한 명은 강의 따위에 관심도 없는 터라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손사래를 쳤고
교수님 역시 강의하면서 자기 책 팔아먹으려고 애쓰는 것만큼 민망한 일은 없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더욱이 자기 학교 아이들은 '페미니즘 비평'이라고 하면 고개부터 설레설레 젓는다면서...
증정본을 받아들고 출판부 사무실을 나서며 우리 세 옮긴이들은 아마 그 책이 초판 1000부를 소화하기도 힘들지 모른다면서, 그냥 오랜 작업을 마침내 끝내고 책도 선을 보인 기념으로 우리끼리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한답시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더랬다. ^^
그래서 몇년 만인 얼마 전 2쇄 1000부에 대한 번역 인세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 약소한 인세는 젖혀두고라도 꽤나 놀랐던 것 같다. 아니, 그 두껍고 어려운 책이 1000부나 (물론 언론사 증정본이 또 몇백 부 소요된다 ㅋㅋ) 팔렸다니!
그 대학 출판부야 뭐 대학 소속이니 판매 부진하다고 망할 염려는 없을 테고, 학교 주축의 문화사업 일환으로 계속 꽤나 쓸만한 책을 많이 내고 있는 듯하니 나로선 더 신경을 쓸 필요도 없다.
나에게도 그 책은 '공역' 자체만으로도 뿌듯한 경험이고 성과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년에 인세 계약으로 작업했던 책이 드디어 얼마 전 출간되어 따끈따끈한 증정본과 함께
초판 3000부에 대한 인세를 받고 보니, 역시나 은근히 책 홍보에 나도 거들어주었으면 하는 눈치다. -_-;;
꽤나 좋은(그러나 잘 팔리진 않는 '인문학 양서들') 국내기획물들을 많이 출간해왔던 그 출판사로선 나름대로 좀 팔아보겠다는 요량으로 기획한 번역물이다보니, 분야는 내가 죄다 그밥에 그나물이라면서 마뜩찮아하는 '자기계발서'다.
그런 책을 나더러 좋은 책이라 주변에 선전을 하라고?
에잇,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다! ;-P
(그러면서 왜 번역은 맡았느냐고? ㅎㅎ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이 제일 먼저 떠오르기도 하지만
오래 알고 지낸 그곳 편집장의 부탁을 잘 거절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번역을 의뢰받을 즈음엔 작업 스케줄에 여유도 좀 있었고...)
어쨌거나 난 이번에도 그저 모르는 척 눈감고 지켜보기만 할 테다.
당연히 책 장사는 출판사에서 하는 거지, 내가 무슨 힘이 있다고!
게다가 내 가족이며 지인들은 정말 책 보기를 돌같이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고 책 많이 읽으시는 이웃 블로거분들께 추천할 책은 또 절대로 아니다! ㅋㅋ
흠...
주절주절 늘어놓다 보니 결국 내 얼굴에 침뱉는 격이 되었고나야.
나도 늘 좋은 책을 스스로 기획해서 번역 출간으로 이어보겠다는 '꿈'은 지니고 살지만
주어지는 일만 소화하기에도 벅찬 상황이니, 권수로는 나름 부지런히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질 면으로 따져보면 여전히 부끄러운 인생이다.
10년쯤 뒤엔 정말 좋은 책이라고 주변에 널리 추천할 번역서들이 내 약력에 콕콕 박혀있게 되기를
빌어본다.